‘나 혼자 산다’ 김광규 “내 꿈은 한국의 알 파치노”
입력 2013-05-08 17:24 수정 2013-05-08 22:26
인터뷰를 위해 노트북을 켜는데 시간이 좀 걸리자 “요새 홈쇼핑에 싸고 좋은 노트북 많은데, 하나 장만하세요”란 소리가 날아왔다. 최근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매주 금요일 밤 방송)에서 보여준 ‘홈쇼핑 마니아’로서의 모습이 결코 설정이 아니었구나 싶었다. 지난 2일 홍익대 인근 탱고바에서 만난 배우 김광규(46)의 첫 인상은 이랬다.
요새 그는 드라마와 영화뿐만 아니라 각종 예능 프로그램을 오가며 활약 중이다. MBC 주말드라마 ‘금나와라 뚝딱’에 출연 중일 뿐 아니라 KBS 2TV 화제 드라마 ‘직장의 신’과 ‘최고다 이순신’에 카메오로 모습을 내비쳤다.
무엇보다 혼자 사는 남자 6명의 리얼 다큐 예능인 ‘나 혼자 산다’에서 낮술을 마시고, 집에서 ‘초록 물고기’와 같은 한국 영화를 보며 기차 여행을 꿈꾸고, 홈쇼핑에서 어머니 신발을 사 드리는 그의 일상은 왠지 짠하면서도 한편으론 참 웃기다. 너무나 리얼하게 일상생활이 다 노출되기 때문에 처음엔 그도 망설였다. “내 집에 카메라 4대를 설치해놓고 안방에서 자고 나오는 것까지 찍어야 하나 싶었죠.”
그런데 이 작품 은근히 고정 시청자 층을 확보하며 순항 중이다. 그는 “혼자 사는 남자가 354만명이라잖아요. 이렇게 많은 줄 몰랐어요. ‘불타는 금요일’이지만 약속 없는 분들이 TV를 보면서 ‘나 하고 똑같구나’ 동질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앞서 지난달 20일 방영된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명수는 12살 편’에서 보여준 그의 능청스러운 시골 교사 연기도 화제였다. 그의 출연 자체가 ‘신의 한 수’였다는 소리와 함께 레전드급 카메오란 호평이 쏟아졌다. 2001년 영화 ‘친구’의 대사였던 ‘느그 아버지 뭐 하시노’도 덩달아 주목받았다.
그는 “저는 한 번에 친해지는 스타일이 아닌데다 예능 울렁증도 있어 고생을 많이 했어요. 낯선 작업 환경, 특히 ‘무한도전’이라는 점 때문에 신경 쓰느라 전날 담까지 걸렸죠”라고 했다. “사실 현장에서 유재석이 많이 도와줬어요. 매우 어색해하는 나의 부담감을 풀어주고 배려해주더라고요. (허공에 대고) 재석아∼재석아∼(웃음). 처음이라 너무 긴장했는데 긴장하지 않은 얼굴로 한 번 더 나가고 싶어요.”
예능을 하는 이유는 무얼까. 그는 “아직도 제 이름을 모르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이름이 알려질 때까지 계속 열심히 하고 싶다”고 했다.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어머, 박광균이다’ ‘아냐 이광규야’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다퉈요. 내가 답답해서 ‘저기요, 저 김광규에요’라고 말한다니까요.”
요즘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10명 중 3명 정도라면, 앞으로 열심히 해서 7명 정도는 자신의 이름 석자를 기억했으면 한단다. 자기 이름이 어려워서(?) 사람들에게 쉽게 각인되지 않은 것에 대한 스트레스와 아쉬움이 무척 큰 듯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학창 시절 친구들은 ‘바퀴벌레’의 부산 사투리 ‘광구벌레’와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바퀴벌레’라고 불렀다. 정말 싫었다. 그래서인지 활동을 시작한 이후 한때 ‘김훤’ ‘김달’과 같은 예명을 쓸까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다.
사실 배우로서 그가 걸어온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일찌감치 군대를 갔고, 택시 운전을 하다 31세 때 비로소 “무대에 서고 싶다”는 꿈을 안고 서울로 올라왔다. 이후 영화판의 온갖 오디션을 수백 곳씩 찾아 다녔고, 드디어 1999년 영화 ‘닥터 K’의 단역으로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존재감을 알린 건 2006년 MBC 드라마 ‘환상의 커플’ 때였다. 다소 코믹한 ‘공실장’ 역할이 주목받으면서 말 그대로 떴다. “그 ‘환상의 커플’을 넘어서야 하는데, 그걸 못 하네요. 죽기 전엔 한 번은 넘어야 하는데.”
대중들은 그의 코믹한 모습을 좋아하지만 그의 롤모델은 미국 영화배우 알 파치노다. 단역으로 시작해 몸소 방송 시스템을 익혀온 만큼 그의 내공은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만으로 다 담아지지 않는다. “같이 작품하신 감독들이 내 얼굴엔 무서운 얼굴도, 야비한 얼굴도 있대요. 저한테 모험을 걸어주는 감독님이 나타난다면 언제든지 다른 모습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배우로서의 꿈을 묻자 몇 년째 똑같이 답하고 있다며 “국민 배우”란 답을 내놨다. 그에게 국민 배우란, 대중들로부터 크게 인정받고 떠받들어지는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그는 “소시민적이고 왜 사람들이 보면 왠지 만만한 듯하지만, 보면 기분 좋아지게 만들고 미소 짓게 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저도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칠 때쯤, 그가 예명에 대한 미련을 접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김광규 이름 석자 앞에 붙을 다음 수식어가 궁금해졌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