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다음세대를 세우자] 자아성찰을 위한 피드백 통해 하나님의 사람 되자

입력 2013-05-08 17:26


느헤미야처럼 시대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게…

사람들은 성급해서 가장 중요한 근본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신앙교육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여러 가지 제도적 측면이 아니라 그런 제도들 때문에 이기적으로 변해버린 아이들의 마음 상태다. 씨를 뿌리고 열매를 기대하기 전에 농토를 일궈야 한다. 돌밭과 가시밭에는 아무리 씨를 뿌리고 거름을 줘도 열매를 기대할 수 없다.

라이즈업 무브먼트의 RPS(라이즈업 플래닝스쿨)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피드백’이다. 자신이 살아온 삶을 객관화해서 반성하는 것(피드백)이 습관화되지 않으면 변화가 있을 수 없다. 이 피드백은 사람이 성장하는 데 가장 중요한 능력인 ‘자아성찰능력’을 길러준다. 소크라테스는 일찍이 “너 자신을 알라”고 말했다.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 것에서부터 진리를 향한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바르게 발전하기 위해서도 이 자아성찰능력이 필요하다. 최근 사랑의교회 사건처럼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은 성공한 이들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이런 사건이 일어났을 때 교회 지도자들은 자신의 위치를 잊어버린 자들을 타이르고, 당회가 고심해서 내린 결론을 지지하는 것이 상식이다. 또 자신은 과연 떳떳한가를 반성하고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내가 알기로 사랑의교회 당회는 몇 번씩 회의를 연장하며 고심 끝에 결론을 내렸다. 적법한 과정을 거쳐 이뤄진 교회 회의 속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것을 부인한다면 교회 공동체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개인적 견해를 교회 회의의 정식 의결보다 옳은 것으로 주장하는 것 자체가 교만이다. 자기 생각과 다르면 인정하지 않고 자신만이 정의라고 외쳐대는 것은 기본적인 자아성찰능력이 부족한 데 기인한다.

좁고 편협한 것은 무서운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한 말처럼 ‘너 자신을 알 수 없다면’ 다른 견해를 받아들일 수도 없을 뿐 아니라 근본적인 자기 성장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피드백이다. 기본적으로 RPS의 플래닝은 ‘목표설정-전략-시간배치-실행-피드백’의 순서로 행해진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목표설정 이전에 피드백이 있다. 새로운 목표설정이란 것은 이전까지의 삶과 전혀 무관한 가운데서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신앙으로 교육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바른 목표와 비전을 심어주기 위해선 반드시 이타적인 심성과 시대를 아파할 줄 아는 마음을 갖게 해야 한다.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느 1:2-4)

느헤미야는 현실적으로 자기 백성들의 아픔에서 가장 멀리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페르시아의 관원으로 남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보장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백성들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알았다.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의 답답하고 힘든 형편을 듣고 그는 수일 동안 슬퍼하고 하나님 앞에서 금식하며 기도했다. 비전은 야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느헤미야와 같이 시대를 아파하는 가슴에서 나온다. 지도자는 백성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 아픔을 지닌 느헤미야에게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 나라를 다시 세우는 임무를 맡기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비전에 대해 많이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비전은 세상적인 야심과 혼동되는 경우가 많다. 뭔가를 이루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이루고자 하는 동기다. ‘무엇 때문에 내가 이 일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깊이 있고 성의 있는 대답이 준비돼 있어야 한다.

모세는 자기를 죽이려 했던 백성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걸고 기도했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자신을 방해했던 유대인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한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 9:1∼3) 사역을 방해했을 뿐만 아니라 돌로 쳐서 자신을 거의 죽음까지 몰고 갔던 유대인들을 향해 이렇게 기도한 것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어 “주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라고 부르짖던 외침과 동일한 마음가짐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지도자는 이렇게 자기 백성을 위해 애끓는 마음을 가진 자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사명을 심어주신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며 아이들의 가슴 속에 느헤미야의 고통을 심어주기를 원한다. 사람들은 죄를 짓고 고통스러워하거나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고통스러워한다. 후자에 속하는 사람에게 전자의 고통은 감해진다. 죄악의 세상 속에서 고통을 피할 수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 때문에 고통을 느껴야 한다.

“퇴화한 집오리의 한유(閑遊)보다 무익조(無翼鳥)의 비상하려는 안타까운 몸부림이 훨씬 훌륭한 자세다. 나는 인간을 기성의 형태로 이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개인이 이루어놓은 객관적 달성보다 주관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지향을 더 높이 사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

신영복 교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나오는 글이다. 하나님도 우리를 이렇게 판단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당장 일어나고 있는 현상보다 그 중심에 무엇을 지향하고 어디에 마음을 쏟느냐를 보신다. 진정한 하늘의 상급을 바라는 자는 하나님 앞에 떳떳한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의 미래인 다음 세대들에게 이 가치를 심어줘야 한다. 무엇을 가지고 고민하느냐를 보면 그 사람의 깊이를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으로 기뻐하고 하나님께서 슬퍼하시는 것으로 슬퍼할 줄 아는 하나님의 사람이 돼야 한다.

입시와 눈앞에 보이는 경쟁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버린 다음 세대들의 가슴을 뜨겁게 해주고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해 살겠다는 실천을 이끌어내는 것은 한두 번의 도전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자기를 돌아보고 새롭게 방향을 설정해나가는 피드백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결국 가장 큰 문제는 이기심이다. 피드백을 통해서 이 근원적 문제를 스스로 발견하게 해야 한다. 이기심은 여러 형태의 옷을 입고 그럴 듯한 모습으로 자기 내부에 똬리를 틀고 있다. 피드백의 목적은 모든 종류의 이기심을 스스로 들여다보고 자신의 야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사명(목표)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자기가 이기적인 인간임을 인정하고 모든 거짓을 걷어내고 나면 새로운 사명과 가야할 길이 보이고 인생의 목적이 분명해진다. 그리고 그때부터 비로소 교육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고, 여러 방법론이 먹혀들기 시작한다. 너무나 뻔한 이야기지만 문제 해결은 문제 인식에서부터 시작된다. 누가 옆에서 “네가 이런 문제가 있어”라고 말해주는 것과 피드백을 통해 자기 문제를 발견하고 지속적으로 목표를 재수정해가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기도 속에서 올바른 피드백이 행해지면 끊임없이 자신의 이기적 동기를 들여다보게 되고 발버둥치며 그 나라와 그 의를 향해 나아가게 돼 있다. 그리고 그 발버둥이 한 인격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온전한 백성으로 세워지게 한다.

이동현 대표<라이즈업무브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