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강기성] 한·미 원자력협정 협상 다시 보기

입력 2013-05-08 19:01


북한의 3차 핵실험 강행과 그에 반응한 국내 일부 정치인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론 등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 환경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양국이 협정 시한을 2016년 3월까지 2년 연장하는 절충점을 찾았다. 매우 다행스런 일이다. 이에 비판적 원전주의자인 필자는 향후 협정의 의미 있는 개정을 위한 주요사항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협정 개정 협상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경험을 넘어서는 특단의 준비가 있었어야 했다. 그러나 이번 협상 과정을 보면 국내 일각에서 제기된 핵보유 주장의 비현실성에 대한 대국민 홍보와 올바른 정보제공이 부족했다. 무역의존도가 주요 20개국(G20) 중 가장 높고 국내총생산(GDP) 중 수출비중이 52%에 달하는 경제상황에서 NPT 탈퇴가 우리 경제에 어떤 파장과 충격을 줄지 국민들에게 충분히 인식시키지 못했다. 그 결과 미국의 핵 비확산 원칙 강화를 확인하게 됐다.

둘째, 협상의 주요 내용인 파이로프로세싱으로 분리해 만든 플루토늄 복합물을 연료로 사용하는 소듐냉각고속로(SFR)에 관한 언론보도가 실제와 차이가 나거나 부풀려진 상태여서 전문가들이 의아해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우리보다 일찍 고속로연구를 시작한 프랑스(슈퍼피닉스)와 일본(몬주)의 예로 볼 때 파이로프로세싱과 연계되는 소듐냉각고속 개발은 성공가능성은 물론 시기와 경제성 등을 명확히 알 수 없다. 무엇보다 분명한 사실은 파이로프로세싱이 국내 원자력학계 전체의 일치된 견해가 아니라 일부 원자력분야 추진론자들의 주장에 기초한 반쪽 의견이라는 것이다. 국가재정의 건전성과 투명성 제고차원에서 국회 예산정책처 같은 중립적 전문기관의 연구·분석이 요구된다.

셋째, 한·미 원자력 신뢰 프로세스 구축을 위한 연구자들의 노력이다. 국내 일부 연구자들은 파이로프로세싱의 장점으로 핵비확산성을 내세우지만 미국은 파이로프로세싱을 재처리로 표현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파이로프로세싱에 대한 안전조치기술을 개발하지 못한 상태다. 파이로프로세싱은 국내 일부 연구자들의 장기 연구개발 과제로는 매력적일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미국과의 협상에서 기술적 설득력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한편 1980년 소량의 플루토늄 분리, 2004년 극미량의 우라늄 농축사건, 2007년 우라늄 분실 사고 및 회수 실패 등 그간 우리 원자력연구기관이 보인 불투명성에 대한 미국의 신뢰 획득을 위한 지속적인 개선노력이 재삼 강조된다.

넷째, 핵 비확산분야 외교안보전문가 양성의 필요성이다. 협정 개정 협상의 양측 대표단 구성을 보면 미국은 국무부 국제안보비확산국이, 한국은 미래창조과학부 원자력국이 주축이다. 미국은 원자력정책의 우선순위를 핵 비확산에 두고 이 분야 외교안보전문가를 다수 보유한 반면 한국은 전문가를 찾아보기 어렵다. 국정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의 협정 개정 필요성 인식을 기회로 국제 수준의 핵 비확산분야 외교안보전문가 양성에 대한 국가 차원의 관심과 투자를 기대한다.

다섯째, 협정의 미래지향적 개정 준비를 위한 워싱턴 싱크탱크의 적극적인 활용이다. 브루킹스연구소와 헤리티지재단 등은 전문성과 권위를 인정받는 지식자원과 인적네트워크의 집합체다. 백악관과 미 의회, 국무부가 이들의 정책보고서를 가장 먼저 받아 본다. 협정 개정 협상전략이 1조 달러 무역대국, 원전 모범국 코리아의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디딤돌로 만들어지기를 희망한다.

강기성 전력경제연구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