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노석철] 제천 아동학대 사건의 이면
입력 2013-05-08 19:01
‘벌칙으로 생마늘과 청양고추를 강제로 먹였다. 아이들을 독방인 타임아웃 방에 길게는 몇 개월까지 감금했다. 독방에 갇힌 아이는 자살까지 생각했다. 여섯 끼를 굶었다는 아이도 있었다.’
지난주 국가인권위원회가 공개한 충북 제천의 J아동양육시설에 대한 조사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보고서에는 ‘말몽둥이’ ‘각목’ ‘대걸레 밀대’ 등 체벌 도구와 가혹행위도 자세히 적혀 있었다.
게다가 J시설은 ‘벽안의 어머니’로 불리는 외국인 선교사가 50년 전 설립해 버림받은 아이들 1200여명을 보살핀 곳이다. 인권위는 현재 원장도 가혹행위를 직접 지시·묵인했다며 교체를 권고했다. 이를 보니 ‘시설이 두 얼굴을 하고 있었구나’라는 배신감이 느껴졌다. 당연히 톱기사 감이었다.
인권위, “원장이 학대 지시”
그런데 인권위가 제공한 사진을 자세히 보니 약간 이상했다. 독방에는 깔끔한 책상과 의자가 있고 벽지도 깨끗했다. 조사가 잘못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나 국가기관이 3개월간 진행한 조사여서 믿을 수밖에 없었다.
마감 후 밤 11시쯤 제천에 다녀온 후배 기자에게 “원장이 진짜 나쁜 사람 같더냐”고 물었다. 대답은 의외였다. “어머니 같이 좋은 사람이라던데요.” 그때 시설에서 성장해 카드회사에 취직한 최모(24·여)씨가 후배에게 전화로 성토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한 교사가 학대를 하다 해고된 뒤 원장님이 5∼6세 아이들에게도 매달 아동학대 관련 교육을 시켰다. 그런데 과거 일을 모두 원장님 잘못으로 매도할 수 있느냐. 타임아웃방에 들어간 애들은 워낙 막말을 하고 통제가 안 돼서 그랬던 것이다.”
순간 아차 싶었다. 시간을 보니 윤전기는 거의 다 돌아간 뒤였다. 다음날 아이들의 증언을 일일이 들어봤다. 그들의 생각도 비슷했다.
“아이들 용돈을 적게 줬다던데, 그거랑 후원금을 적립통장에 모았다가 퇴소할 때 자립자금으로 1200만∼1300만원씩 준다. 나도 1800만원 받아서 나왔다.” “시설에서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를 배우고 요리, 태권도 등 가고 싶은 학원은 다 보내준다. 자유가 없다고 하는데 어떻게 아이들이 90명 가까이 생활하는 시설에 규율이 없겠나.”
종합해보니 과거 일부 교사들이 학대하다 해고되거나 징계를 받은 사례가 적지 않았다. 사후 조치는 대부분 이뤄지고 있었다. 부모 없는 아이들이 생활하는 시설의 특성상 규율은 다소 엄격한 듯했다. 현재 시설에 있는 10대 어린 아이들은 규율이 너무 세고 체벌도 남아있다는 얘기도 했다. 그러나 퇴소한 아이들은 상당수 삼성그룹, 카드회사, 대학을 다니는 등 건실한 사회인으로 성장했다. 시설에서 타임아웃방에 감금됐거나, 가출 경험이 있는 퇴소자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한결같이 전·현 원장과 시설에 깊은 애정과 신뢰를 드러냈다. 인권위가 원장에게 유리한 아이들 증언은 배제했다는 불만도 나왔다.
원생들, “인권위가 사실 왜곡”
그렇다면 진실은 뭔가. 인권위는 아동학대가 장기간 이뤄졌다는데, 가혹행위를 당한 아이들조차 인권위 조사가 잘못됐다고 나서고 있다니…. 결국 고민 끝에 “기사를 잘못 썼구나”라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나도 어느 정도 체벌은 아이들 훈육 차원에서 괜찮다고 여기는 건 아닌지 꺼림칙함은 있었다.
이틀 뒤인 지난 6일자 사회면에 아이들 증언을 그대로 실었다. 시설 원장은 후배기자에게 “조사 받을 때 죄인보다 더 못한 취급을 받았는데, 알아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러나 이미 J시설 책임자들은 거의 모든 방송과 신문에서 ‘천사의 탈을 쓴 범죄자’로 매도당했다. 피부색이 다른 나라 아이들을 위해 청춘을 바친 ‘벽안의 어머니’도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인권위와 언론이 깊이 되새겨봐야 할 대목이다.
노석철 사회부장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