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기수] 왜 하필 비만세인가?
입력 2013-05-08 17:37
담뱃값 인상안에 이어 다시 논란이 예상되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무소속 문대성 의원이 지난 6일 발의한 속칭 ‘비만세법(안)’을 두고 하는 말이다. 비만이나 영양 불균형을 일으킬 수 있는 고열량·저영양 식품을 만들거나 수입 또는 유통·판매하는 자에게 보건복지부 장관이 부담금을 부과·징수할 수 있도록 현행 법을 고치자는 내용이다.
문 의원은 “‘어린이 식생활안전관리 특별법’을 통해 고열량·저영양 식품의 광고시간 제한, 스쿨존 판매금지 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우리나라 청소년의 비만도는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라며 “청소년 비만 유발 요인인 패스트푸드, 탄산음료 등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법으로 소비를 줄일 필요가 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비만 문제가 심각하고, 해결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 문제를 꼭 세금, 그것도 간접세 신설 형식으로 해야 하는 데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일단 문 의원은 비만세를 신설하면 일거양득의 효과가 기대된다고 주장한다. 비만의 원인이 되는 고열량식품 패스트푸드 소비를 줄일 수 있고, 비만퇴치활동에 필요한 재원도 비교적 쉽게 마련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까. 정책엔 양면성이 있다. 좋은 점이 있으면 나쁜 점도 생길 수 있다. 이를테면 정책의 빛과 그늘이다. 소위 담뱃값 인상 법안은 흡연자에게만 부과되는 제세부담금을 올리자는 것이다. 하지만 비만세는 뚱뚱한 사람에게만 물리는 제세부담금이 아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의 원료 제조 및 공급자에게 비만 유발 세금을 물리자는 것이다.
물가에 미치는 영향도 비만세 쪽이 담뱃값 인상 쪽보다 훨씬 더 크고 세다. 비만세는 패스트푸드와 같은 원료를 사용하는 일반식품의 가격도 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결국 식음료 전반에 걸쳐 소비 심리가 위축되고, 그로 인해 망하게 되는 음식점과 회사도 생길 수 있다.
2011년 10월 이 제도를 세계 최초로 시행한 북유럽의 복지국가 덴마크가 반면교사 감이다. 비만세 시행 1년 만에 정책실패를 인정하고 폐지한 나라가 바로 덴마크다. 이 나라는 비만세 실시 후 물가가 전반적으로 상승하고, 특히 패스트푸드 판매 감소에 따라 해당 일자리가 격감하는 부작용을 겪었다. 국민들이 값싼 식자재를 찾아 이웃 나라로 원정 가는 일도 발생했다.
비만 인구를 줄이는 것은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일이다. 비만은 당뇨와 고혈압, 고지혈증을 비롯해 심장병과 뇌졸중을 일으키는 고(高)위험인자다. 비만인구를 줄이지 못하면 각종 생활습관병(성인병)으로 병원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게 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비만으로 인해 낭비되는 우리나라의 사회·경제적 비용은 2011년 기준 연간 약 1조8000억원에 이른다. 게다가 우리나라 남자 청소년의 비만 유병률은 17.9% 수준까지 치솟은 상태다. 비만 문제를 방치하면 장차 현재보다 훨씬 더 많은 의료비를 낭비하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골칫거리 비만은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옳을까. 비만학자들은 무엇보다 고지방·고열량 음식을 과도하게 섭취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지 않는 비만위험군을 대상으로 잘못된 식생활 및 행동 습관을 교정해주는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기본원칙이라고 말한다. 나아가 전국 각 시·군·구 보건소를 중심으로 비만 예방과 치료에 필요한 정보를 지역주민들에게 끊임없이 제공, 경각심을 일깨우는 노력도 필요하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듯이 정해진 기간에 체중을 줄인 사람들에게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현금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영국에서 체중감량 성공 시 참가자 1명당 현금 300달러를 상금으로 제공하는 실험을 한 결과 44%가 1년 동안 의학적으로 의미 있는 체중감량에 성공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