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십자가 앞에서 갈라지는 사람들

입력 2013-05-08 17:29


고린도전서 1장 18절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고난을 겪게 됩니다. 고난은 불꽃이 위로 올라가는 것처럼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삶의 일부입니다. 더욱이 고난은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찾아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사랑하는 자녀들의 고난을 보고만 계실까요? 하나님이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고난을 십자가라 부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일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발생합니다. 하나님은 일을 하실 때 일꾼을 부르시고 그를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꾼으로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고 예수님을 따르는 하나님의 일꾼들인 제자들에게도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마 10:38)

십자가 앞에서 사람들은 두 종류로 갈라지게 됩니다. 첫 번째 종류는 십자가를 회피하거나 거부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십자가의 원수라고 말합니다. 십자가의 원수인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의 영광과 안일만을 추구하는 성향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빌 3:18∼19) 그들은 이 땅에서 당하는 고난과 비천함을 부끄럽게 여깁니다. 그런 사람들의 눈에는 십자가가 어리석고 미련하게 보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십자가의 원수들이 누렸던 영광은 주님의 공의로우신 심판대에서 결국 부끄러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 지명된 고위 공직자들이 청문회에 나올 때마다 그런 사례를 목격합니다.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부동산 투기를 하고 각종 불법적인 행위로 자기 배를 불리며 살아오다가 결국 그 일 때문에 국민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고 물러가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불완전한 세상의 심판도 그러할진대, 완전하신 하나님의 심판은 얼마나 엄정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불의한 모든 것이 밝혀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꽃같은 눈동자로 우리의 모든 것을 살피시고 모든 사람을 공의로운 심판대 앞에 서게 하실 것입니다. 바로 그때,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온 사람들의 이 땅에서의 영광은 부끄러움이 될 것입니다.

두 번째 종류는 십자가를 사랑해 받아들이는 사람들입니다. 십자가의 고통을 느끼지 못해서가 아니라 십자가 고통 뒤의 승리를 믿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주사를 맞을 때 아프지 않아서가 아니라 주사를 맞고 나면 병이 나을 줄 알기에 그 고통을 감수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될 수만 있으면 십자가를 피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통과하면 부활로 승리하실 것을 확신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십자가를 짊어지셨습니다. 생명의 부활로 십자가의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십자가 자체가 즐거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멸망과 생명의 길이 결정됩니다. 십자가 앞에서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홍택주 베델루터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