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창환 (1) 아흔살의 愚問 “나를 신학으로 이끄신 까닭은?”
입력 2013-05-08 17:29
이 세상에서 살 날이 많이 남지 않았다. 한국식 나이로 90년을 살았으니 꽤나 긴 세월을 걸어왔다. 뒤돌아보면 나만큼 행복한 사람이 있었을까 싶다. 시골 장로 할아버지의 평화로운 집에서 구김살 없이 자란 내가 아버지에 이어 목사가 되고 이후 한평생 신학 교수로 살아오면서 줄곧 드는 생각은 ‘그저 하나님 은혜구나’이다. 막대기보다 못한 나를 사용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
무릇 사람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어느 정도 안다. 그러나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모르는 경우도 더러 있다. 살다보면 자신을 한 우물 안에 가둬놓은 채 바깥은 내다보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 또는 내 자신의 주장만 밀어붙이며 타인과 다른 세상의 이야기에는 귀를 막는 이들도 적지 않다.
나의 지난날에도 어떤 우물에 갇혀 있었던 적은 없었던가, 그리고 나는 지금 어디쯤 서 있는 것일까. 스스로 진단해보는 일은 너무 늦은 것일까. 하지만 기독교 목사로서, 소위 신학 전공 교수로서, 특히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죽기 전에 나의 신앙과 신학의 족적과 좌표를 확인하는 일 또한 의미 있는 작업이라 생각한다.
한국교회는 어떨까. 내가 몸담아온 한국 장로교회의 신앙·신학적 좌표는 어디에서 어디로 흐르고 있는 것일까. 내가 한평생 경험한 한국의 장로교회는 정통주의적 보수교회 그 자체였다. 보수신앙에 기반을 둔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지고 운영되었다. 그들의 신앙과 신학 노선이 기독교의 전부인 것인 양 받아들여진 지난날의 한국교회 역사 속에서도 분명 우물안 개구리 같은 시절이 있었다.
우리 교단의 신학만이 진리요 정통이라고 확신하면서 우리 교리와 상충되거나 그런 사조(思潮)가 나타나기라도 할 때면 전 교회가 들고 일어나 정통주의를 옹호하는 투사 노릇을 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한국 장로교회가 고집스럽게 붙들고 있는 정통주의는 한마디로 ‘오직 성경’이라는 표어를 내건 종교개혁의 정신을 간과한 시대착오적 주장에 가깝다.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에 의해 개혁된 교회인 개신교는 항상 새로워져야 한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신학적으로 후퇴하고 있다.
나는 지난 3월 미국에서 돌아와 모교인 장신대 강단에 다시 섰다. 1988년 은퇴한 이래 꼭 25년만이다. 매주 화요일 3시간씩 신약성경신학을 1년간 강의한다. 학교로 다시 돌아오면서 후배들과 제자 교수들은 물론 새파란 신학도들과 얘기를 나눌 때가 많다. 그들과 나누는 대화에서는 오늘날 목회자와 한국교회에 대한 걱정이 적지 않게 묻어난다. 나는 스승으로, 선배로, 때로는 같은 신앙인으로서 그들에게 말한다.
“하나님 보시기에 진실하게, 옳게 살아야 한다. 구약에 나오는 예언자들이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단어가 ‘체데크(공의)’와 ‘미쉬파트(정의)’였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도 온전해지는 노력을 게을리 해선 안 된다. 이를 위해 우리 신학도는 물론이고 기독교인들은 ‘제대로 알고 믿어야’ 한다. 즉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살고 바로 전하는 것이 우리의 본분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는 과연 그렇게 살아왔을까.
정리=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약력 △1924년 3월 19일. 황해도 황주군 천주면 외하리 출생 △오산고등보통학교 졸업 △장로회신학대학 졸업 △홍익대 영문학과(B.A) △미국 프린스턴 신학대(Th.M) △대한성서공회 성서번역관 △장신대 제13대 학장 △인도네시아 선교사 △니카라과 장로회신학교 학장 △러시아 모스크바 장신대 학장 △장신대 명예 교수 및 초빙교수(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