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휠체어 마라토너 김수민의 각오

입력 2013-05-07 20:43 수정 2013-05-07 22:34


2005년 3월 김수민(26)씨는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4층에서 떨어지는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나자마자 의사에게 물었다. “선생님, 저 다시 걸을 수 있어요?” 의사로부터 차가운 대답이 돌아왔다. “수민씨는 이제 못 걷습니다.” 음대 입학을 앞두고 사고를 당한 그는 부모님에게 울며 말했다. “저 딱 사흘만 울게요. 엄마 아빠는 딱 일주일만 우세요.”

절망에 빠져 있던 그는 병원 식당에서 우연히 박정호 휠체어 마라톤 국가대표팀 코치를 만나면서 제2의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휠체어 마라톤에 입문한 것이다. 국내 최초이자 현재 유일한 여성 휠체어 마라토너의 ‘도전 인생’은 이렇게 시작됐다. 전화 인터뷰 내내 그의 목소리는 밝고 활기찼다.

김씨는 지난 4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일대에서 열린 ‘제22회 서울국제휠체어마라톤대회’ 풀코스(42.195㎞)에 출전해 2시간32분54초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국내 여성 선수 최초의 풀코스 완주였다. “겁 없이 덤빈 거예요. 2011, 2012년 서울대회 하프코스에서 연속 우승했는데, 하프코스로는 도무지 체력이 방전되지 않아 풀코스에 도전했죠.”

첫 풀코스 도전이었지만 그는 당시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다. 레이스 초반 오른팔이 휠체어에 부딪힌 것. 힘든 레이스를 펼치고 있던 그에게 대회 최고령 선수인 일본인 이와타 노보루(66)씨가 다가왔다. 여러 국제대회에 출전하며 3년 전부터 알고 지내던 이와타씨는 한국말로 “괜찮아?” 하고 김씨에게 물었다. 김씨는 레이스를 포기하고 싶을 만큼 아팠지만 괜찮다고 대답했다. 이와타씨는 김씨 앞에서 달리며 맞바람을 막아 줬다. 둘의 ‘아름다운 동행’은 결승선 직전까지 계속됐다. “이와타 할아버지가 없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그런데 결승선이 보이니까 갑자기 승부욕이 발동하는 거예요. 그래서 할아버지를 따돌리고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죠. 돌아보니 할아버지가 황당해 하며 허허 웃으시더군요. 호호호….” 김씨는 내년 대회에도 풀코스에 도전해 기록을 2시간20분대로 단축시키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고향인 창원에서 살고 있는 그는 다재다능한 끼를 갖고 태어났다. 특히 운동과 음악에 소질이 있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학교 대표로 각종 육상대회에 출전했다. 부산예술고에 진학해선 바이올린을 전공했다. 그러나 사고를 당한 후 하반신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바이올린은 자꾸만 엇박자를 냈다. 결국 바이올린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2011년 두바이대회 하프코스 3위, 지난해 호주대회 하프코스 우승을 차지한 김씨는 목돈이 드는 국제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다양한 부업을 한다. 부모님에게 더 이상 폐를 끼칠 수 없다며 학생들을 상대로 보컬 레슨을 하고 바에 나가 노래도 부른다. 그놈의 돈은 언제나 그의 가슴에 멍을 새긴다. “돈 걱정 없이 훈련할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어요.”

그는 차량 운행이 뜸한 새벽에 창원의 도로를 질주하며 훈련한다. “위험할 것 같다”고 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위험하죠. 그렇지만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도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어요.” 도전은 그가 살아가는 힘이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