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상임] 딸과의 대화
입력 2013-05-07 19:14 수정 2013-05-07 19:15
2주 전 혼자서 용감하게 45일 유럽여행을 떠나는 딸을 보면서 몇 해 전 딸과의 대화 장면이 떠올랐다. 당시 딸은 고등학교 2학년으로 한창 입시 준비 중이었다. 딸이 아나운서가 되길 원했던 나는 “주현이는 무엇을 할 때 가장 즐거워? 우리 딸은 어떤 꿈을 가지고 있을까?”라고 물으며 은근히 기대에 찬 눈빛을 보냈다.
그런데 갑자기 눈물을 흘리면서 “엄마, 진짜 내 엄마 맞아? 내가 가출하면 누구한테 연락할 거야? 내가 정말 뭘 하고 싶은지 알아?”라고 하더니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엄마의 빈자리가 너무 커서 항상 외로웠어. 친구들이 엄마들이랑 무리지어 다닐 때 나는 언제나 혼자였어. 미술이 너무 하고 싶었는데 엄마는 계속 다른 거 하라고 압박하더라. 난 디자이너가 되는 게 꿈이야.”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는 느낌이었다. 더 이상 내 주장을 펼 수 없었다. 딸이 원하는 대로 미술학원에 등록하고 미대 입시를 준비했다. 주변에서 고등학교 2학년 때 진로를 바꾸는 건 무모한 결정이라고 다들 한마디씩 했다.
재수 삼수를 시키더라도 아이의 선택을 존중해주고 싶었다. 딸은 기특하게도 바로 산업디자인학과에 합격했다. 딸은 자신이 하고 싶을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믿어주고 지지해준 엄마, 아빠 덕분이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매사 소극적이었던 딸은 미술을 전공하면서 활달하고 적극적인 아이로 바뀌었다. 국토종단 프로그램에 참여해 전남 해남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890㎞를 걸어서 완주했다. 올 3월에는 대학을 휴학하고 아르바이트하면서 유럽 배낭여행을 준비했다. 며칠 전 영국에서 기성용이 출전한 축구경기를 봤다며 즐거워하는 딸의 목소리에 싱그러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해 딸과 대화를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많은 청소년들이 자신의 미래,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작정 앞만 보고 달린다.
내 아이의 얼굴 표정이 어둡다면, 무기력한 태도를 보인다면, 다가가서 진솔한 마음으로 그들이 속마음을 풀어낼 수 있는 대화를 시도해 보자. 부모가 아닌, 아이들 입장에서 그들이 원하는 삶에 대해서 한번쯤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그 아이의 미래는 더 행복하게 바뀔 수 있다.
김상임(기업전문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