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알아주는 이 없어”… 외로움에 지친 어르신들

입력 2013-05-07 18:13 수정 2013-05-07 22:15


“야 이놈아.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

지난달 22일 밤 10시30분쯤 서울 성동경찰서 성수지구대에 김모(65)씨가 다짜고짜 소리를 지르며 들어왔다. 김씨 뒤를 30대 택시기사가 씩씩거리며 따라왔다. 기사는 “이 어른이 택시비를 안 내고 그냥 내리잖아요, 빨리 요금 주세요”라고 다그쳤다. 술에 잔뜩 취한 김씨는 결국 택시비를 지불했지만 떠나지 않고 지구대에 눌러앉았다. 경찰을 상대로 끊임없이 뭔가를 얘기하다 20여분 만에 지친 듯 제풀에 잠잠해졌다.

성수지구대 김기규(52) 경위는 “종종 노인들이 지구대에 찾아와 이런 식으로 소란을 피운다”고 했다. 그는 “노인들이 말 상대가 없어서 그런 것 아니겠느냐”며 “욕을 하거나 시비를 걸어오기도 하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그분들 마음속 응어리가 풀리는 것 같아 그냥 둔다”고 말했다. 김씨는 밤 11시가 넘어 지구대를 떠나면서 김 경위에게 “노인네가 힘든데 집까지 안 데려다줄거야?”라고 한마디 던졌다. 목소리는 힘이 없었고 축 늘어진 어깨는 왜소해 보였다.

외로운 노인들이 세상을 향해 화를 내고 있다. 절박한 처지를 알아주는 이가 없고, 딱히 하소연할 곳도 없어 마음속에 쌓아온 감정을 ‘분노’로 표출하는 것이다. 생활고에 시달리거나 가족들로부터 완전히 소외된 이들은 ‘비행노인’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일본 논픽션 작가 후지와라 도모미는 이를 ‘폭주노인’으로 명명했다. 쉽게 감정이 폭발해 범죄를 저지르는 노인들로 2000년대 중반 일본에서 노인 범죄가 증가하면서 등장한 용어다.

유모(64)씨는 지난달 24일 아들 뻘 남성을 흉기로 찔러 경찰에 붙잡혔다. 자신이 사귀는 20대 여성과 동거한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그 여성은 유씨와 몇 번 식사를 한 것뿐이었다. 경찰은 유씨가 외로움에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했다.

지난 1월에는 전남 순천의 한 피부관리실에서 김모(66)씨가 흉기를 들고 여종업원에게 2000원을 달라고 했다. 김씨는 이 돈을 들고 100m도 못 가서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독거노인으로 생활보호대상자였다. 경찰청에 따르면 60세 이상 노인폭력 범죄는 2010년 2만1599건, 2012년 2만4479건으로 증가했다.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허준수 교수는 “노년기가 길어지면서 경제적 문제와 가족 해체, 배우자 사망으로 독거노인이 늘고 있다”며 “특히 남성은 지역사회 관계망에 취약해 술에 빠지고 범죄 등 일탈행동을 저지르기도 한다”고 분석했다.

8일은 어버이날이다. 노인들에겐 돈이나 선물도 필요하지만 더 절실한 건 대화를 나눌 상대다. 서울 광진노인종합복지관 돌봄이 류수경(44)씨는 “노인들은 한번 전화하면 끊지 않고 계속 대화를 이어가려고 한다. 그만큼 대화 상대에 목말라 있다”고 말했다.

신상목 나성원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