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체념·원망 삭여주신 주님 다섯 식구 함께 모여 감사기도 드리는 날을 주세요”
입력 2013-05-07 18:00
희귀병 아들 2085일째 간병중인 어느 어머니의 어버이날 소원
“아야 아야∼.” 여섯살 홍녕이는 배가 아프다며 좁은 침대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왼쪽 가슴팍에는 가느다란 호스가 꽂혀 있고, 아랫배 쪽에는 묵직한 비닐주머니를 달고 있었다. 괜히 만나러 온 건 아닌지 후회가 밀려들 즈음, 그가 나섰다. 침대에 사뿐히 올라서서 아이의 등을 ‘숙련된 조교’처럼 익숙한 솜씨로 주무르고, 한 손으로는 부채를 흔들어가며 열을 식혀준다. 그러면서도 농담과 미소를 잃지 않는 이는 홍녕이 엄마 김은실(33)씨다.
모자(母子)가 이곳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소아병동에서 함께 생활한지는 7일로 2085일째. 홍녕이가 태어난 지 2주 만인 2007년 8월 23일부터 줄곧 입원해 있었으니 집이나 마찬가지다. 지방 병원까지 포함하면 태어난 지 사흘째 되는 날부터 줄곧 병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홍녕이는 ‘소장기능장애’ 환자다.
음식물을 소화·흡수하는 소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희귀성 질환인데, 소화를 시키지 못하니 음식물을 섭취할 수가 없다. 대신 호스를 통해 정맥으로 영양제를 넣어 영양분을 공급한다. 배변은 아랫배 쪽으로 빼놓은 소장 끝 인공항문을 통해 이뤄진다.
질환 특성상 홍녕이는 30분 주기로 복통과 구토 증세를 겪고 있다. 밤낮 없는 통증과 구토 때문에 곁에서 돌봐줄 사람이 24시간 필요하다. ‘내가 낳은 생명이니까.’ 그 이유 하나만으로 어머니 김씨는 20대 중반부터 6년을 하루같이 홍녕이의 그림자처럼 살고 있다.
“초창기 1년 넘도록 저는 거의 매일 울기만 했어요. 너무 힘들어서. 매일 눈이 퉁퉁 부어있고 잘 먹지도 못하니까 주위에서는 홍녕이보다 제가 더 걱정이라고 한 적도 있었지요.” 절망과 분노, 체념이 하루에도 몇 번씩 뒤바뀌며 힘들 때마다 김씨는 홍녕이를 데리고 지하 1층 기도실로 향했다.
“처음에는 원망만 늘어놨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하나님은 내가 기도하기를 원하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계절이 몇 번 바뀌면서, 숟가락으로 입에 음식을 넣지 않아도 조금씩 커가는 홍녕이를 지켜보면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큰딸(10)은 시어머니가, 막내딸(3)은 친정어머니가 키워야 하는 현실도, 한달에 100만원 넘게 드는 병원비 마련을 위해 주말 특근과 출장을 도맡아 하는 남편도 고맙기만 했다. ‘동변상련’의 맘으로 격려해주는 6인실 환우와 부모들도 마찬가지.
모자를 처음부터 지켜봐 온 삼성서울병원 원목 김정숙(여) 목사는 “홍녕이 엄마를 볼 때마다 모성이 곧 하나님의 사랑임을 깨닫게 된다”면서 “홍녕이의 소장 이식을 위해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7일, 홍녕이 엄마의 소원이 궁금했다.
“다섯 식구가 밥상 차려놓고 함께 감사기도 드리고 밥먹는 거요.”
‘다같이 일하는 온 식구가 한상에 둘러서 먹고 마셔 여기가 우리의 낙원이라….’ 찬송가(559장)의 가사가 입에서 맴돌았다. 누구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홍녕이 가정에게는 간절한 소원이었다. 그 소박한 바람에는 홍녕이의 쾌유와 온 가족의 평안, 하나님의 돌보심을 바라는 마음까지 모두 녹아 있었다.
2013년 5월, 베이비박스에 자식을 내다버리는 황폐한 현실 속에서도 자녀와 가정을 위해 희생을 아끼지 않는 어버이의 마음은 오롯이 이어져오고 있었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