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성태윤] 외환위기를 정말 막으려면
입력 2013-05-07 19:02
1997년 외환위기로 나라가 존망의 기로에 섰던 우리 입장에선 외환위기 재발을 방지하고 이에 대비하는 것은 항상 중요하다. 실제로 리먼브러더스 파산과 함께 글로벌 금융위기가 세계를 강타하던 2008년 우리는 사실상 외환위기에 다시 노출됐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어려워진 국제금융기관들이 자금을 빼나가자 원화가치가 폭락하고 외환보유고에 대한 우려가 번졌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 금리논쟁 와중에 금리동결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논거 가운데 하나로 외환위기 이슈가 등장했다. 금리를 낮추면 외환위기가 올 수 있으니 금리를 동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금리를 낮춰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원화를 보유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금리를 낮춰야 할 상황에서 금리를 동결하고 원화 강세를 오랫동안 용인하는 것이 오히려 외환위기를 일으키는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이다. 외환위기 국가에서 위기 이전에 발생했던 주요 현상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높은 이자율, 고평가된 통화와 경상수지 악화, 재정건전성 약화이기 때문이다.
다른 국가들에 비해 높은 이자율은 수익률 차이를 노리는 해외자금의 국내 유입을 가져와 해외충격 발생 시 이러한 자금이 다시 유출되며 불안 요인이 된다. 특히 경제의 펀더멘털이 약해 높은 이자율을 버티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는 향후 이자율 하락이 예측되기 때문에 당장의 높은 이자율을 향유하려는 단기 해외투자자금 유입을 가져와 문제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해외투자자금 유입은 해당 국가의 통화를 고평가시킨다. 1992년 영국의 검은 수요일 위기, 1997년 우리나라의 외환위기 그리고 2000년대 초반 아르헨티나 사태까지 모두 위기에 앞서 급속한 해외자금 유입이 있었고 해당 국가 통화는 고평가됐었다.
다른 국가에 비해 높은 이자율이 유지되는 상황에서는 자본통제가 없는 한 해외투자자금의 급속한 유입을 가져오고 이것이 해당 국가 통화를 고평가시킨다. 쉽게 말해 우리나라 이자율이 일본에 비해 높으면 일본 금융기관들이 우리나라에 투자하는데 그 과정에서 엔화를 원화로 바꿔야 하기 때문에 원화가 고평가된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고평가된 원화는 일본과 경쟁하는 우리 수출업체에 타격을 입히고 경상수지 악화 증상이 나타난다. 그것이 바로 경상수지 적자 내지는 악화가 대개 외환위기 이전에 나타나는 이유이다. 실제로 우리는 1997년 외환위기를 포함하여 대부분 경제위기 직전에 엔저에 노출된 것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이러한 경상수지 적자는 국내에서 생산된 것보다 많은 재화와 용역을 사용하는 상황을 의미하기 때문에 대개는 정부도 지출이 많아서 재정수지가 적자일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외환위기 이전에 재정건전성이 악화되는 것도 함께 관찰된다. 또한 정부 지출이 늘어나서 여기에 소요되는 재원을 보존하기 위해 정부채권 발행이 늘어나고 이 과정에서 채권가격이 떨어져 이자율이 높아졌을 수도 있다.
외환위기 발생위험을 줄이기 위해선 금리가 경제상황을 적절히 반영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와 같이 국제적인 저금리 상황에서는 오히려 금리를 낮추고 엔저에 적극 대응하며 계속적으로 재정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외환위기 방지를 위해 중요하다. 여기에 더해서 외환위기 방지의 최후 안전판은 외환보유액이라는 측면에서 이에 대한 면밀한 관리는 빼놓을 수 없다.
우리 외환보유액은 현재 약 3000억 달러에 이르는 비교적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이 자금이 충분한 안전판으로 역할하기 위해서는 규모 못지않게 유사시 사용할 수 있는 유동성 확보가 중요하다. 특히 한국투자공사(KIC)와 연결된 자금을 비롯해 개별 항목별로 유동성이 실제로 충분히 확보되는 것이 중요하다.
성태윤(연세대 교수·경제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