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이주배경 청소년지원재단 김교식 이사장 “리틀싸이 악플 안타까워… 포용의 한국사회돼야”
입력 2013-05-07 17:47 수정 2013-05-07 22:17
환갑도 넘은 남자가 눈가엔 눈물이 그렁그렁해지고, 목이 메어 한동안 말을 못한다. 죽을 고비를 몇 번씩 넘겨가며 탈북한 대학생이 한국에서의 삶이 너무 힘들어 자살하려고 수면제를 털어 넣었다는 얘기를 할 때였다. 학교 다니다 순간의 실수로 임신을 하고 가족한테까지 냉대당하는 미혼모들의 힘겨운 삶을 얘기할 때도 이 남자는 한참을 먹먹해했다.
언론과의 관계가 냉랭했던 노무현 정부 시절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에서 1년 반 동안 역대 최장수 공보관을 지낸 그를 2006년 처음 만났을 때 인상은 ‘소통하는 공무원’이었다. 그의 표현대로 공무원보다는 기자 편에 조금 가까이 서서 이해하고자 노력해서였을까. 밤낮 기자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바쁜 와중에 성균관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따는 것을 보곤 그 열정에 놀랐다. 지난 정부에서 여성가족부 차관을 거쳐 무보수로 1년째 이주배경 청소년지원재단을 이끌고 있는 김교식(61) 이사장을 지난 2일 서울 효자동 이주배경 청소년지원재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만난 사람=이명희 논설위원
-이주배경이란 용어가 낯설다. 어떤 기관인가.
“다문화가정 청소년이나 탈북 청소년, 외국인근로자 자녀 등 이주배경 청소년의 사회적응과 건강한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2006년에 설립한 여성부 산하 비영리재단법인이다. 이주 청소년들은 대부분 한국 사회 적응이나 학업수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들의 한국 사회 적응을 지원하고 인권을 보호하며, 학업이나 취업을 지원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들을 하고 있나.
“외국에서 태어나 부모가 이혼한 후 한국인과 재혼하거나 한국에서 일자리를 얻으면서 우리나라에 온 중도입국 청소년의 사회적응을 지원하기 위해 ‘레인보우 스쿨’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 생활에 가장 필요한 기본적인 정보와 한국어 교육 및 사회적응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고 입국 초기 청소년들의 일반학교 편·입학, 취업교육 연계 등 원활한 초기 정착을 지원하고 있다. 또 이주배경 청소년들을 위한 진로탐색 프로그램인 ‘무지개 잡(Job)아라’를 진행하고 있다. 18세 이상 중도입국 청소년을 대상으로 직장생활을 위한 중급 한국어, IT 초급과정, 직업탐색과 소양교육 등을 10주간 과정으로 실시한다. 여름에는 이주배경 청소년과 일반 청소년들이 함께하는 통합 캠프를 운영한다.”
-얼마 전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던 ‘리틀싸이’ 황민우군이 다문화가정이라는 이유로 악성 댓글에 시달렸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황군뿐만 아니라 악플 때문에 자살한 사람도 있고, 피해를 보는 사람이 많은데 안타깝다. 정부나 기업은 다문화나 우리와 다른 사람들에 대해 외형적으론 관대하고 베푸는데 마음속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별개인 것 같다. 또 하나는 대한민국 사회가 치열한 경쟁사회이다 보니 사람들이 관대하지 못한 게 있다. 실제로 다문화가정 청소년이나 탈북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왕따 당하거나 어른들이 차별대우 받는 일들이 자주 일어나는데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주 청소년지원사업을 하면서 안타깝거나 어려운 점은?
“우리 사회가 마이너리티를 포용해야 하는데 경제적으론 지원하면서도 소홀히 하는 게 탈북 아이들이다. 탈북 청소년들이 겪는 문제는 새로운 사회 적응이나 경제적 어려움도 있지만 외로운 것이 가장 심각하다. 여학생들의 경우 본인이 북한 출신이라고 하면 부모들이 조심하라고 하면서 몇 년 사귄 친구가 떠나버린다고 한다. 그래서 정신적으로 적응을 못하고 학교에서 중도 탈락하고 사회에서 낙오되는 경우가 많다. 이주배경을 가진 청소년들이 앞으로 우리 사회의 부담이 되지 않고 희망이 될 수 있도록 이들을 마음속으로 포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탈북 청소년들을 가까이서 돌보면서 가슴 아팠던 사례가 있는지.
“신촌의 명문 대학에 다니던 한 탈북 대학생이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학업을 따라가기 힘들고 경제적으로도 힘든 데다 마음을 터놓고 상의할 친구나 선배도 없다 보니 죽겠다는 생각으로 수면제 수십 알을 먹었다. 그런데 막상 죽으려고 하니 하늘에 계신 부모님 얼굴도 떠오르고, 사선을 넘어 어렵게 한국에 왔는데 이것도 못 견디느냐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서 옆에 자는 학교 친구를 깨워 병원에 가서 위세척을 하고 살아났다. 얼마 전에 만났더니 탈북 친구들과 200만원씩 벌어서 중국도 가보고, 해외여행을 하려고 아르바이트로 공장에서 막노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독일이 통일을 이룬 것은 서독정부의 적극적인 통일정책도 주효했지만 그보다는 동·서독 주민의 교류와 상호이해가 결정적인 밑거름이 되었다. 우리가 탈북 주민들을 우리 가족으로 따뜻이 감싸 안을 때 그들은 우리가 바라는 방향으로 통일의 역군이 될 것이다.”
-보람도 클 것 같다.
“지난해 8월 충북 괴산에서 이주배경 청소년과 우리 청소년 300여명이 모여 통합캠프를 열었는데 키가 작고 모자를 깊게 눌러쓴(탈북 청소년들은 아직도 공개장소에서 노출되는 것을 조심하기 때문이라고) 탈북 소녀가 중국을 거쳐 탈북하는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과, 마침내 한국에 도착해 모든 것이 낯선 가운데 꿈에도 생각 못한 대학에 다니면서 느끼는 행복감, 북한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얘기한 적이 있다. 그날 참석한 청소년들은 물론 나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주배경 청소년이 멘토링 사업에 참여한 일반 청소년과 함께 손을 잡고 그동안 친구 덕분에 한국 사회 적응이 수월하고 재미있었다고 자랑하거나 한국말을 거의 못하고 사실상 혼자 거주하는 중도입국 청소년이 미용기술을 배워 미용실에 취직했다는 소식들을 들을 때 마음이 뿌듯했다. 인천이나 파주 등지에서 주말에 이주배경 청소년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찾아오는 우리나라 청소년들도 여럿 있다. 이주배경 청소년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 자체가 큰 보람이고 행복이다.”
-멘토링 사업에는 주로 어떤 사람들이 참여하는지.
“멘토링은 우리 재단에서 전국에 걸쳐 체계적으로 하는 것도 있고, 거기에 덧붙여서 아이들을 부모처럼 잘 보살펴줄 퇴직공무원이나 뜻이 있는 사람들을 골라서 맺어주는 일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재단 차원에선 2009년부터 이주배경 청소년 학습지도 멘토링을 하고 있다. 지난해는 서울, 인천, 경기도에 거주하는 이주배경 청소년 120명과 멘토 120명을 1대 1로 연결해 70시간의 멘토링을 진행했다. 멘토들은 대학생이나 대학원생이 87.3%를 차지하는데 직장인들도 여럿 참여하고 있다. 지난 토요일에는 탈북 청소년, 주로 무연고 청소년들 11명과 은퇴한 공직자 등 8명과 청계산 등산을 했다.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장과 한미숙 전 청와대 중소기업 비서관 등이 열심히 참여하고 있는데 참 고맙다.”
-이달 하순에 뜻깊은 행사를 한다고 들었는데.
“오는 27일부터 29일까지 ‘아시아지역의 다문화사회 발전을 위한 국제콘퍼런스’를 개최하려고 한다. 우리 사회는 농촌총각 장가보내기로 시작된 국제결혼이 2000년대 초 급증하면서 1기 다문화사회를 지나서 그 사람들이 결혼해서 아이들이 학교도 들어가고, 그 사람들이 정착해서 사회활동도 하고 싶은 2기 다문화사회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다문화사회의 필수조건인 건전한 국제결혼이 이뤄지려면 국제결혼 당사국인 아시아 각국 정부간 협조와 시민단체 등 국민들의 관심과 협조가 필요하다. 또 우리보다 다문화를 먼저 경험한 일본이나 대만이 다문화가 진전되면서 어떤 사회정책을 폈는지 서로의 경험을 교환하고 국제결혼과 국제결혼 이후의 배려할 점 등을 논의하는 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아시아 다문화 사회발전의 모범적인 허브가 되도록 아시아 11개국의 정부 인사, NGO(비정부기구), 학자 등과 유엔 관계자들을 초청해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려고 한다. 올해가 첫 행사인데 이자스민 새누리당 의원이 기조연설을 할 예정이고, 앞으로 매년 개최하려고 한다.”
-저출산 고령화로 2017년부터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우리나라로선 다문화정책, 이민정책을 적극적으로 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한 정책을 차질 없이 추진하고 일·가정 양립이 가능한 기업문화를 정착시켜 출산율을 높이는 것이 선결과제지만 적극적인 다문화 정책도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국제결혼이 이뤄지기 위한 국가간 협력과 제도화가 필요하고 국제결혼 이후 한국 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을 여성부를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 외국인력 활용 관련 정책은 고용노동부, 법무부 등 각 부처가 소관업무에 따라 담당하고 있고 전체적으로 국무총리실에서 통합 조정하고 있는데 전문 인력의 도입, 활용실적은 극히 저조하고 대부분 비전문인력 중심으로 외국인 유입이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바람직한 인력 수급정책을 수립해 이를 잘 운영하고 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 하고 싶은 사업이 있다면.
“한국 사회도 이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주배경을 가진 청소년들이 학교나 사회에서 따돌림 당하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은 미래 한국의 발전을 위해서도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 경제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또래 청소년 간에 서로 이해하고 도와주는 문화, 즉 청소년들에게 다문화 감수성을 높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앞으로 우리 청소년들과 이주배경 청소년들 간의 심리적·정서적 차이를 해소하고 서로 포용할 수 있는 소양을 길러주는 프로그램을 적극 확대해 나가려고 한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
■ 김교식 이사장은
30년 공직생활 이후 대학 강의와 사회봉사활동, 해외원조사업으로 더 바쁘게 살고 있다. 퇴직공직자 등을 주축으로 사회봉사단체 ‘희망나무 플러스’를 조직해 미혼모와 가출 청소년들을 돌보고 있다. 개도국에 경제발전 경험을 전수하는 KSP 사업에도 참여해 아프리카 가봉 수석고문과 해외원조 NGO인 글로벌 투게더 이사를 맡고 있다. 딸 셋을 둔 그는 고교 2학년인 막내딸과 주말에 자전거, 등산을 같이하면서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느낀단다. △1952년 충남 논산 출생 △1975년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1979년 행시 23회 합격 △2001년 9월∼2010년 3월 재정경제부 공보관, 재산소비세제국장, 기획재정부 기획조정실장 등 △2010년 3월∼2011년 6월 여성가족부 차관 △2012년 5월∼현재 이주배경 청소년지원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