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 ‘밀어내기 폐해’… 100박스 주문하면 200박스 떠넘겨
입력 2013-05-06 22:36
남양유업 본사 직원이 대리점주에게 폭언을 퍼붓는 사건이 큰 파문을 일으키면서 유통업계의 이른바 ‘밀어내기’ 폐해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밀어내기란 본사가 거래상 우호적인 지위를 악용해 대리점에 물품을 강제로 떠넘기는 행위를 일컫는 업계 은어다.
남양유업대리점피해자협의회 회원들은 대부분의 대리점이 본사와의 관계에서 ‘을’의 입장이기 때문에 부당한 요구라도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들어줄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한 대리점주는 6일 “대리점에서 본사에 제품 100박스를 주문하면 본사는 이보다 많은 200박스를 가지고 온다”며 “재고가 많으니 알아서 처리하라고 떠넘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이어 “주문하지도 않았는데 잘 안 팔리는 제품을 끼워서 가지고 오는 경우도 있고 유통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거나 아예 지난 제품을 가져다주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지방의 대리점주들은 ‘찢어버리기’ 공포에 시달린다고 입을 모은다. 본사가 눈 밖에 난 대리점에 물량을 주지 않아 업계에서 도태시키는 것을 뜻한다. 지방 대리점주는 “주변 대리점이 없어지는 것을 보면 본사 영업사원 말에 벌벌 떨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업계에선 업체 간 과도한 경쟁을 원인으로 꼽는다. 식품업체들은 제품을 출시하면 대형마트나 슈퍼마켓 등에 공격적으로 진열해 인지도를 높이고 매출을 올리는 ‘푸시(Push) 전략’을 쓴다. 그러나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종종 밀어내기로 변질된다는 것이다. 특히 시장 진입장벽이 낮고 박리다매 구조인 음료업계에서 이런 현상이 발생하기 쉽다.
업계 관계자는 “식품업계의 경우 히트 상품 하나가 매출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제품 출시 초기에 물량을 대량으로 푸는 게 관행”이라며 “본사가 다소 무리한 목표를 세우면 대리점주가 그 뒷감당을 해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엔 경기 불황으로 가공식품 매출이 줄어들어 본사의 밀어내기 압박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