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들에 가족 소중함 일깨워준 ‘편지 & 책’

입력 2013-05-06 21:50


서강대, 책 추천 요청→학부모, 편지와 함께 1권 선정→대학, 직접 구입해 전달

올해 서강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김재홍(19)씨는 지난달 어머니 김경아(46·여)씨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밤늦도록 혼자 어린이집에 남겨졌던 이야기부터 경북 영주 시골에서 외할머니와 살았던 추억들이 A4 용지 두 장 분량의 편지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어머니는 편지에 “엄마가 직장생활하느라 오랜 시간 함께 있어주지 못해 미안하다. 훌륭하게 자라줘서 고맙다”고 적었다. 편지를 받아든 김씨와 김씨의 어머니는 함께 울먹였다. 어머니는 김씨에게 ‘천국의 열쇠’라는 책을 추천했다. 그가 대학교 때 읽었던 책이다. 어머니는 “아들이 대학생활을 하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게 소중하다는 걸 간직했으면 좋겠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서강대는 지난 2월 말 신입생 학부모 가정 1828곳에 서한 한 통을 보냈다. ‘부모님의 따뜻한 마음을 담은 편지와 책 한 권을 추천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빈 편지지 한 장과 추천도서 목록을 동봉했다. 서강대는 894통의 편지를 받았고 부모가 추천한 책을 직접 구입해 편지와 함께 학생들에게 전달했다.

중국문화학과 정우진(19·여)씨는 아버지의 편지를 받았다. 정씨는 평소 아버지에게 편지를 자주 쓰는데 답장을 받아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표현이 인색한 아버지에게 ‘사랑한다’는 얘기를 들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철학과 유한얼(20)씨도 “생각지도 못한 편지에 깜짝 놀랐다”고 했다. 유씨는 세상이 부정적으로 느껴지던 고교시절 학교를 자퇴했다. 대전에 사는 부모님은 편지에 “당장 손에 잡히는 것이 없을 때 불안하고 두렵다는 걸 한얼이가 성장통을 겪으며 조금은 알았을 거야. … 네가 꿈을 위해 조금씩 나아가는 과정에서 보석 같은 시간인 대학생활을 자유롭게 즐기고 행복하길 기도한다”고 적었다. 유씨는 “방황으로 힘들었던 시기를 부모님이 이해해준 것 같아 기뻤다”고 말했다. 그는 시간날 때마다 편지와 어머니가 추천해 준 책 ‘오래된 미래’를 펼쳐 보고 있다.

정모씨의 아들은 지체장애를 갖고 있다. 그는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 이후 갑작스런 병 때문에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해 항상 미안한 마음이었다고 했다. 정씨는 처음으로 쓴 편지에 “누구보다 너를 지지한다”고 적었다.

서강대 유기풍 총장은 “서로를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너무 가깝기 때문에 그 소중함을 잊고 지내는 것이 바로 가족”이라며 “부모가 말없이 내미는 손이 힘든 일을 헤쳐나가야 할 자녀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