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박정태] 숭례문과 소통

입력 2013-05-06 19:22 수정 2013-05-06 21:39


조선 건국 초기 태조가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며 도성을 축조할 때 동서남북에 4대문을 세웠다. 4대문 이름에는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덕목을 담았다. 동쪽은 흥인지문(興仁之門), 서쪽은 돈의문(敦義門), 남쪽은 숭례문(崇禮門), 북쪽은 홍지문(弘智門)이라 명명했다. 인을 흥하게 하고, 의를 돈독히 하고, 예를 숭상하고, 지혜를 넓히는 문이라는 것이다. 이 가운데 제일 큰 성문인 숭례문은 서울에 남아 있는 목조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대한민국의 얼굴로 여겨져 왔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6·25전쟁 등에도 꿋꿋이 버텨온 숭례문은 우리 겨레의 숨결이 오롯이 깃든 역사적 상징물이다.

시대 정신도 복원돼야

그렇게 600년간 수도의 관문 역할을 해온 국보 1호 숭례문이 2008년 2월 어처구니없이 화마에 무너져 잿더미가 됐을 때 우리는 망연자실했다. 토지보상에 불만을 품은 한 개인의 방화와 정부의 부실한 관리체계가 빚어낸 참화에 민족적·문화적 자부심도 여지없이 무너졌다. 하지만 숭례문은 5년 3개월 만에 국민 품으로 돌아왔다. 일제강점기 훼손됐던 부분도 복원되고, 전통기법에 따라 원형을 살려 웅장한 모습으로 우뚝 섰다. 다행스럽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5년여의 기다림 끝에 지난 4일 숭례문 복구 기념식 행사장을 찾은 시민들은 감개무량한 표정이었다. 휴일이자 어린이날인 5일에도 숭례문을 보기 위해 2만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

숭례문 복구의 의미는 작지 않다. 단순히 자긍심을 높이기 위한 문화재로 돌아온 게 아니다. 문화재 복구 차원을 뛰어넘어 시대정신을 담아 새로 탄생했다고 해석하고 싶다. 문(門)은 상징성이 있다. 수도 성곽의 문은 걸어 잠그면 궁궐 보호와 방위라는 소극적 개념에 그치지만 열어젖히면 세상과의 소통을 의미한다. 성곽의 안팎을 연결하는 대문이 활짝 열리면 각계각층의 남녀노소가 오가며 교류하는 길목이 된다. 중앙과 지방을 잇고 세계를 드나드는 통로로 역할한다. 유형의 숭례문만이 복구돼야 할 게 아니라 그와 더불어 소통과 화합이라는 무형의 시대정신이 복원돼야 하는 이유다.

‘상생’이라는 주제로 국민화합을 염원하는 정부의 경축행사가 진행됐지만 그것이 구두선에 그쳐서는 안 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기념식 축사에서 새로운 희망의 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숭례문 앞 화단에 ‘희망’이란 꽃말을 가진 돌단풍을 식재했다. 돌단풍은 척박한 환경의 바위틈에서도 잘 자라 하얀 꽃을 피우는 생명력 강한 토종 야생화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담겨 있다. 국민행복의 새 시대를 염두에 둔 것이겠지만 그러려면 우리 사회의 불통 문제부터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국민 마음에 돌단풍을

지금 불통의 벽은 너무 높다. 남북관계에서부터 청와대와 여야 정치권, 정부와 재계, 그리고 사회 곳곳에 이르기까지 소통의 부재를 절감한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남북관계는 도발 위협으로 벼랑 끝까지 몰고 간 북한 측에 1차적 책임이 있지만 그래도 우리 정부는 대화의 통로를 열어놔야 한다. 내치에 있어서는 정부 출범 이후 공직자 인사 파동 등을 초래하며 국민과 야당에 불통 이미지를 각인시킨 대통령과 청와대가 먼저 변화돼야 한다. 마침 민주당이 신임 대표를 선출하고 민생을 살리기 위한 초당적 협력을 강조한 만큼 정부여당도 상생정치로 화답할 일이다.

방미 중인 박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 등의 일정을 끝내고 귀국할 때에는 대북 해법은 물론 소통과 화합이라는 선물 꾸러미를 들고 오길 기대한다. 이는 숭례문 화단뿐 아니라 국민의 마음에 돌단풍을 심어주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소통 부재로 소실됐다 복구된 숭례문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박정태 문화생활부장 jt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