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갑’이라고 함부로 막 해도 되나

입력 2013-05-06 19:15

남양유업의 젊은 영업사원이 50대 대리점주에게 욕설을 내뱉으며 막무가내로 물건을 떠넘긴 녹음파일이 공개된 것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민낯을 드러낸 것과 다름없다. 대리점주를 관리하는 본사 영업팀이라는 이른바 ‘갑’의 위치에 있다고 삼촌뻘은 족히 넘을 사람에게 입에 담기도 어려운 폭언을 퍼붓는 것은 반인륜적 패륜행위에 가깝다.

일전에는 대기업 임원이 기내에서 끓인 라면이 맛이 없다며 항공사 여승무원을 함부로 대하다 사표를 냈으며, 졸부인 제빵 회사 회장은 차를 빼달라는 호텔 직원을 가죽지갑으로 때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사정이 다르기는 하지만 이번 영업사원의 폭언도 우월적 지위에 있는 자의 횡포라는 측면에서는 똑같다. 법적으로는 동등하지만 사회·경제적으로는 결코 대등하지 않은 뿌리 깊은 불평등이 곳곳에 똬리를 틀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번에 문제된 회사도 오래 전에 대리점주에 의해 검찰에 고발된 상태였다. 이들은 본사가 전산 데이터를 조작해 주문량의 2∼3배에 이르는 제품을 강매한 것은 물론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을 대리점에 내려 보낸 적도 많았다고 주장했다. 명절마다 떡값 명목으로 대리점마다 현금을 떼어가고 각종 명목으로 리베이트를 요구하기도 했다고 한다. 검찰 수사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한국 사회에서 ‘을’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든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 전통 사회는 이웃의 아픔은 나누고 기쁨은 함께 즐기는 상부상조 정신이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향약적 질서와 두레나 계 등이 바로 대동사회를 꿈꾼 우리 선조들의 지혜 아니었던가. 그러다 자본주의적 승자독식 문화가 한꺼번에 몰려와 상호존중과 대동의 사고에 금이 가면서 강자의 횡포가 상습화된 혼돈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무엇보다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더 넓은 아량과 여유를 가지고 상대방을 배려했으면 한다. 돈과 힘을 앞세워 약자임이 분명한 상대에게 부당한 대우와 요구를 주저하지 않는다면 공동선(共同善)이 무너져 내려 언젠가는 공동체의 연대의식마저 뿌리째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