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밀어내기에 빚 쌓여… ‘장기 팔아 입금하라’ 폭언”
입력 2013-05-06 18:35 수정 2013-05-06 00:20
“장기를 팔아서라도 입금하라.” 남양유업 대리점을 운영하다 그만둔 김모(33)씨는 라디오에 출연해 “본사 직원에게 상품 대금 입금을 미뤄 달라고 요청했다가 이런 말까지 들었다”고 주장했다.
남양유업 본사 직원이 대리점주에게 폭언을 퍼붓는 녹취록(국민일보 쿠키뉴스 5월 4일 보도)이 공개된 뒤 회사 측은 사과문을 발표하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일부 직원들이 대리점주들에게 회식비용을 떠넘기고 명절 떡값을 요구하는 등 부당행위를 일삼았다는 폭로가 잇따르면서 파장은 더 커지고 있다.
6일 서울 남대문로 남양유업 본사 앞에서 만난 피해 대리점주들은 “본사의 사과문은 전부 쇼”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1993년 대리점을 시작해 지난 1월 그만둔 김원영(53)씨는 “회사는 대리점주들과 아들뻘인 20대 본사 직원들이 너무 친해질까봐 담당자를 수시로 바꿨다”며 “친해지면 ‘밀어내기’ 등 압력을 넣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씨는 “남양유업의 밀어내기에 시달리다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빌린 돈이 1억원이 넘고 서울신용보증기금에도 800만원을 빚졌다”며 “본사에 사정도 하고 살려 달라고 빌어도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대리점을 운영할수록 상황만 악화됐다”고 말했다.
피해 점주들이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한 고소장에 따르면 본사 영업직원들은 대리점 계약 해지를 거론하며 점주들에게 1인당 10∼20만원의 명절 떡값을 요구하기도 했다. 점주들이 떡값을 주지 않으면 “대리점 그만두고 싶습니까? 내일부터 물량 더 나갑니다”라며 보복성 밀어내기를 했다는 것이다.
고소인들은 계속되는 ‘밀어내기’ 악순환에 빚을 내면서도 대리점주들이 계속 납품 받은 건 ‘마이너스 자동이체(CMS) 계좌’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남양유업은 가맹점주와 대리점 계약을 체결하며 물품 대금을 청구하기 위해 은행에 마이너스 가상계좌를 개설토록 했다. 본사는 조작된 발주 물량대로 배송한 뒤 배송장을 제시하고 점주의 동의 없이 은행이나 카드사에서 물품 대금을 지급받을 수 있었다. 잔고가 없더라도 마이너스 CMS 계좌를 통해 결제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서울 이외의 지역은 상황이 더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제주에서 대리점을 운영했던 전상관(45)씨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자신을 ‘노예’라고 표현했다.
전씨는 “고립된 섬 지역이라 횡포가 더 심했다. 욕설 등 언어폭력에 하도 시달려 대리점을 그만두면서 사지가 벌벌 떨릴 정도였다”고 했다. 지금 전씨에게 남은 것은 1억8000만원 빚과 마음의 상처뿐이다.
매월 한 차례 열린 지점 회의도 실상은 접대 자리였다고 한다. 전씨는 “식사, 술자리, 룸살롱 순으로 회식이 이어졌는데 지점 과장, 팀장 등 본사 직원 40∼50명이 참석했다”며 “이 회식비용은 10여개 대리점에서 전부 지불해 왔다”고 말했다. 경남 진주에서 대리점을 운영했던 전양우(44)씨 역시 “회식비용 요구는 너무 당연시돼왔던 거라 굳이 설명할 필요도 못 느낀다”고 말했다.
본사가 판매 실적 우수 대리점에 지급하는 ‘판매 장려금’을 반환하라고 요구한 경우도 있었다. 서울 보문대리점을 운영하던 정승훈(42)씨는 지점 영업팀장으로부터 2011년 11월 판매 장려금 반환 요구를 받고 41만원을 팀장 명의 계좌로 송금했다. 본사 측이 판매 장려금을 각 지점과 결탁한 대리점에 몰아서 지급하고 다시 현금으로 회수해 ‘주는 척’만 했다는 것이다. 정씨는 “남양유업 제품 중 ‘악마의 유혹, 프렌치 카페’가 있는데, 이 회사에 딱 맞는 이름”이라고 했다. 경기도 고양시 능곡대리점을 운영했던 최근훈(50)씨는 “죽기 살기로 일했지만 남은 것은 빚더미뿐”이라며 “돈보다 남양유업의 진실된 사과를 원한다”고 말했다.
김유나 전수민 정건희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