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눈 골퍼의 기적 … 1207위 美 언스트, PGA 정복
입력 2013-05-06 18:18 수정 2013-05-06 22:24
열 살 소년은 엄마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느라 들떠 있었다. 데디 베어가 그려진 작은 펜스를 엄마에게 만들어주겠다며 고사리손으로 톱을 들었다. 그런데 사고가 났다. PVC 파이프를 자르다 파이프 조각이 튀면서 오른쪽 눈을 찌른 것이다. 각막을 10바늘이나 꿰매는 수술을 받았지만 시력은 좋아지지 않았다. 한쪽 눈의 시력은 잃었지만 소년은 꿈이 있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처럼 세계적인 골퍼가 되는 게 그의 꿈이었다.
어릴 때 엄마에게 줄 선물을 만들다 오른쪽 눈을 다친 ‘외눈박이 무명 골퍼’ 데릭 언스트(22·미국). 그가 마침내 희망의 샷을 날리며 잔잔한 인간 승리의 드라마를 연출했다. 언스트는 6일(한국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의 퀘일할로골프장(파72)에서 끝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웰스 파고 챔피언십에서 연장 접전 끝에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하는 감격을 누렸다. 세계랭킹 1207위에 불과한 신인이자 한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 장애인 골퍼가 일군 우승에 갤러리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언스트는 올해 본격적으로 PGA 투어 무대에 뛰어들었으나 7개 대회 중 5개 대회에서 컷(예선)을 통과하지 못했다. 언스트는 이번 대회도 네 번째 대기선수였는데, 많은 선수가 출전을 포기하면서 개막 사흘 전에야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대회 장소로 이동했다. 2부 투어 대회에 참가하려고 조지아주 애선스로 렌터카를 몰고 가던 그는 원래 차를 반납하고 다른 차를 빌린 뒤 6시간30분을 달려 대회 장소인 샬럿으로 향했다. 빌린 차를 예정되지 않은 장소에 반납할 경우 내야 하는 추가 요금 1000달러(약 110만원)를 아끼려 한 것이다.
지금까지 고작 2만8000달러를 벌었던 그는 이날 우승상금으로 120만6000달러의 거액을 챙기는 기쁨을 누렸다. 6일 발표된 세계랭킹에서도 무려 1084계단이나 뛰어오른 123위에 자리했다. 올 시즌 PGA 투어에서 가장 어린 우승자인 언스트는 “돈은 돈일 뿐 잠시 왔다 사라질 테지만, 직업을 갖고 앞으로 2년 동안 여기서 뛸 수 있다는 점은 내가 원하는 바”라며 환하게 웃었다.
서완석 국장기자 wssu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