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방열] 약탈의 도시, 파리

입력 2013-05-06 19:12


“40여년 전 파리의 하수도에서 프랑스의 문화적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

1969년 1월 프랑스 파리에서 고(故) 이수용 주불 대사와 콩코르드 광장 주변 카페에 간 적이 있다. 조흥은행(현 신한은행) 여자농구팀이 프랑스 대표팀에 승리한 것을 기념한다며 이 대사가 마련한 자리였다. 본인이 대사로 활동한 것보다 몇 배 더 큰 국위 선양이었다며 선수단을 축하한 자리였다. 카페는 서울의 작은 통술집을 연상케 했다. 내부에서는 생음악이 흘렀고 도로에 접한 벽은 투명유리여서 거리가 훤히 보였다.

때마침 유리창 너머 앙증맞게 생긴 작은 차 한 대가 멈췄고 차에서 내린 신사가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그 신사가 우리가 앉은 좌석 옆으로 지나가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이 대사가 벌떡 일어서더니 반갑게 서로 인사를 나눴고 이어 우리에게 소개했다. 프랑스 외무부 장관이라고 했다. 비서도 없이 허름한 코트차림이었다. 시가를 입에 문 채 손바닥만한 차를 손수 몰고 통술집에 들어선 것이다.

프랑스 외무부 장관이라니…. 파리인들의 검소함과 자유스러움에 놀랐고, 한편 부러웠다. 전후 프랑스 드골정부 관료들의 평범함과 민주주의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파리 관광을 하다 보면 안내인이 ‘파리의 자랑’이라며 하수도를 보여준다.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에 파리의 하수도를 관광객들에게 개방한다. 지상의 파리는 다소 무질서하게 보인다. 길은 좁고, 구도로와 신도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뒷골목은 서울의 무교동 피맛길보다 더 지저분하다. 하지만 하수도는 도로 밑에 질서정연하게 배치돼 있다. 냉기와 함께 소독약 냄새가 나지만 절대로 악취가 아니다.

파리의 하수도는 총연장 2000㎞, 경부고속도로의 네 배가 넘는다. 그곳에 들어가면 수많은 관들이 질서정연하게 지나가고 있다. 첫째가 이름 그대로 하수관이다. 두 번째는 전기 배선관, 세 번째는 가스배관,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통신망은 절대로 불에 타지 않는 절연재로 싸여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다. 가끔 영화에서 보았던 하수구인데, 그곳을 견학하면 프랑스가 왜 선진국이며 엄청난 문화적 저력과 함께 ‘테제베’나 ‘엑소세 미사일’ 같은 첨단 과학문명을 어떻게 조화시키고 있는가 하는 의문점이 풀리게 된다. 파리의 질서정연한 하수구 관리는 국가를 과학적으로 관리하는 나라가 위대한 문화도 관리해 나갈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파리를 ‘약탈의 도시’라고 한다. 나폴레옹 1세 때부터 프랑스의 얼굴로 떠오른 이 도시는 사실상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약탈물로 가득 차 있다. 프랑스가 자랑하는 루브르 박물관에는 나폴레옹 1세가 세계 전역을 누비며 약탈한 각국의 미술품과 보물들이 즐비하다. 콩코르드 광장에는 나폴레옹 1세가 이집트 원정 때 약탈한 오벨리스크가 자랑스럽게 서 있다.

최근 보도에 의하면 파리의 묘지에 있는 십자가가 수난을 겪고 있다. 절도범들이 동으로 만들었거나 금장식이 들어 있는 십자가를 약탈해 생활비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주민들의 신고가 급증하지만 절도범들은 갈수록 대범해져 백주대낮에도 다리에 장식한 꽃무늬 동판 심지어 금장식으로 된 문화재까지 손상시키고 있다.

우리나라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1950년대 빈곤하던 때다. 광화문 네거리에는 세종대왕, 강감찬, 을지문덕, 이순신 등 위인들의 동상이 있었다.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그 동상에 붙어 있는 동판이나 길바닥 표시물까지 파헤쳐 팔아넘겼다. 살기 힘들면 나타나는 현상이겠거니 하지만 최근 파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약탈 보도를 보고 난 뒤 수십년 전 카페에서 만난 외무부 장관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는 우리나라 중추 산업인 자동차산업에 경고등이 켜졌다고 했고,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는 “한국의 진짜 위기는 북핵보다 경제성장 능력이 멈춰버린 것”이라고 했다. 우리 경제나 세계 경제가 어렵긴 어려운 모양이다. 그렇다고 약탈이 정당화되어서는 안 되겠다.

방열(건동대 전 총장·대한농구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