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가정의 달, 가정의 문화

입력 2013-05-06 17:18


“너희 가정에는 어떤 문화가 있니?” 오래 전 유학시절 박사과정에서 함께 공부하던 미국인 친구가 물었다. 문화와 신학이라는 같은 관심사를 나누며 공감대를 형성했던 친구였다. 하지만 막상 그 전공을 내 가정에 적용하는 질문을 받자 특별히 대답할 말이 없었다. 평소에 늘 기독교 문화를 강조했고 가족과 함께 연극이나 미술관 관람 등을 빼놓지 않고 즐겼던 나였지만 ‘우리 집만의 가정 문화’라는 특별한 물음 앞에서 달리 떠오르는 게 없었다. 머뭇거리던 나에게 그 친구는 자기 가정의 문화를 알려줬다.

그 가정의 문화는 금요일 저녁의 ‘무비 나잇’으로 시작된다.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는 DVD를 빌려오고 피자와 팝콘을 준비해서 가족이 거실에 모여 영화를 본다. 신나게 영화를 본 다음에는 서로를 위한 간단한 축복 기도를 나누고 잠자리에 들어선다. 다음 날은 일명 ‘엄마 아빠 늦잠 자는 날’이다. 아이들은 한 주간 동안 자기들을 위해 수고한 엄마 아빠의 쉴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스스로 끼니를 해결한다. 대신 식탁에 빵과 시리얼, 바나나 등을 미리 비치해 놓는단다. 이 이야기를 듣고 무릎을 탁 쳤다. ‘이 간단한 일을 왜 우리 가정은 생각도 못했을까?’ 가정의 문화라고 해서 거창할 필요는 없다. 사소한 일이라도 가족이 고유하게 의미 부여하는 규칙이면 된다. 사실, 사소해도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가정의 규칙적 리듬인 문화가 형성되면 그 결과는 매우 지대할 것이다.

얼마 전 한 다큐 프로그램에서 밝힌 유대인들의 우수함 비결(0.2%의 유대인이 미국 명문 아이비리그 대학생의 30%를 차지한다!)은 놀랍게도 ‘금요일 만찬 문화’였다. 유대인 학생들은 그들의 정체성과 지적 호기심을 일깨워준 가장 큰 계기로 아무리 바빠도 금요일 저녁이면 가족이 함께 모여서 식사를 나누며 서로 대화했던 경험을 지목했다. 그들의 대화는 상호 질문과 대답 찾기라는 고유한 방식이다. 사실 이는 안식일의 시작이라는 종교적 의례였다. 금요일 오후부터 비교적 성대한 만찬을 정성껏 준비하고, 저녁 식사를 나누며 안식일을 기념한다. 기억과 감사를 상징하는 두 개의 초를 켜놓고, 아빠가 가족 모두를 위한 축복의 기도를 낭송한다. 이후로 저녁 식사와 대화가 이어진다.

우리에게는 어떠한 가정문화가 있는지 생각해보자. 아주 사소한 리듬이라도 신앙의 메시지를 반영하는 규칙을 만들어보자. 우리 가족은 아이들이 안 좋은 성적을 받거나 좌절하는 일이 생기면 ‘실패 축하 파티’를 연다. 우리에게 늘 새로운 가능성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이야기하고 나누기 위함이다. 문화는 제도화가 아니다. 따라서 가정의 문화는 억지로 강요되기보다는 자발적 참여의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고대 유대인들은 아이가 처음 토라를 배울 때 토판에 꿀을 발라주어서 하나님 말씀의 첫 경험을 달콤한 기억이 되게 해주었다(시119:103). 이를 적용해서, 평소에 간식을 집에 늘어놓기보다는 가정예배 시간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이나 별미를 특별 제공하거나, 또는 가족 간의 열린 대화 시간으로 이어지게 하는 섬세한 배려가 필요하다. 요즘 급속히 늘어나는 사회적 질병들은 가정에서의 결핍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다. 크리스천들이 가정의 문화를 선도하는 일은 오늘날 도덕적 혼란의 가파른 벼랑 위에서 긴급구조 신호를 보내는 수많은 가정들에게 선사할 수 있는 귀한 선물일 것이다.

김선일 교수(웨스트민스터 웨스트민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