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은 일부교사 소행” vs “안타깝지만 인권침해”… 제천 양육시설 학대 논란, 진실은?

입력 2013-05-06 05:29

[쿠키 사회] 충북 제천의 J아동양육시설이 아이들에게 생마늘을 먹이고 독방에 가뒀다는 기사를 출고한 2일 밤, 국민일보 취재팀은 이 시설에서 자란 A씨(22·여)와 연락이 닿았다. 두 살 때 이곳에 온 그는 2010년 자립해 모 금융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16년간 생활했기에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아동학대 실태를 직접 겪거나 고스란히 목격했을 터였다.

A씨가 쏟아낸 말은 뜻밖이었다. “아무 잘못 없는 마미(엄마)에게 말도 안 되는 기사가 나와서 너무 억울해요.” 그가 ‘마미’라고 말한 이는 이 시설을 설립해 50년간 운영해온 미혼의 미국인 선교사 W씨(77·여)다. 지난달 원장직에서 물러나 법인 이사장이 됐다. A씨는 “나처럼 성인이 돼서 집(J시설)을 나온 퇴소자가 28명이다. 지난달 설립 50주년 행사에 그중 24명이 참석했다. 우리가 학대를 당했다면 그 자리에 갔겠느냐”고 했다.

◇퇴소자들 “마미는 잘못 없어요”=취재팀은 3일부터 그 28명을 수소문해 10명의 얘기를 직접 들었다. 서울에서 삼성 계열사에 다닌다는 B씨(21·여)는 취재팀을 만나고 싶다며 제천까지 내려왔다.

“저는 거기서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어요. 태권도 같은 외부 학원도 원하면 보내주고, 학업이 부진하면 선생님 섭외해서 과외도 시켜줘요. 다른 시설보다 용돈은 적은데 대신 개인 적금통장을 만들어 자립자금을 모아줬어요. 퇴소 때 받으면 최소한 1200만∼1300만원은 돼요. 저는 1800만원 들고 나왔어요.”

부산에서 대학에 다니는 C씨(20·여)는 “퇴소하면 혼자 살아야 하니까 사고 당하지 말라고 아이들에게 미리 소방훈련을 시켜준다. 지금도 비가 많이 오거나 태풍이 올라오면 마미랑 국장님(W씨 뒤를 이어 지난달 원장에 취임한 P씨)에게서 ‘괜찮냐’는 전화가 걸려온다”고 했다.

인권위가 지적한 ‘타임아웃방(독방)’ ‘생마늘’ ‘체벌’ 등에 대해 13명은 똑같은 얘기를 했다. “잘못을 여러 번 되풀이하고 대드는 아이들에게 혼자 곰곰이 생각해보라고 타임아웃방을 둔 거다. 단체생활이라 혼자 있을 시간·공간이 없으니까.” “너무 심한 욕을 입에 달고 다니는 아이들이 있어서 버릇 고쳐주려고 시범케이스로 몇 명에게 생마늘을 먹게 한 거다.” “아이들을 때린 선생님은 예전에 따로 있었다. 마미 몰래 그랬고, 이를 안 마미가 그 선생님을 쫓아냈다.”

이들은 하나같이 ‘문제 선생님’이라며 D씨와 E씨를 거론했다. D씨는 2005년, E씨는 2007년에 이곳을 떠난 사람이다. 퇴소자 F씨(22)는 “초등학생 때 D선생님이 1주일에 한 번씩은 단체기합을 줬고, 식판에 밥을 많이 준 다음 5분 안에 못 먹으면 때리고 그랬다. 그러다 마미가 오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잘해줬다. 우린 너무 어려서 원래 그런 건 줄 알았다. 나중에 눈치챈 마미가 그 선생님 내보내고 아이들에게 이러이러한 일 당하면 자기한테 신고하라고 아동학대 교육을 했다”고 말했다.

이들 중 일부는 인권위 조사 때 참고인으로 이런 얘기를 진술했다고 한다. 향후 검찰 조사에서 집단 탄원하는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도 했다.

◇원생들 “집이 좀 더 좋아졌으면 해서…”=취재팀은 3일 오후 이 사건을 처음 인권위에 신고한 원생 G군(18)과 통화할 수 있었다. 그는 “(신고한 걸) 후회한다”는 말만 남긴 채 전화를 끊었다. 이어 제천에서 현재 이 시설에 살고 있는 원생 4명을 만났다. 모두 인권위 조사를 받았던 아이들이고 이들의 얘기는 조금 달랐다.

H군(17)은 생마늘을 먹어봤다고 했다. 그는 “E선생님이 있을 때 마늘을 먹었고, 놀이터에서 1시간 이상 혼자 벌을 선 적도 있다. 2007년 그 선생님이 나간 뒤론 체벌이 많이 줄긴 했지만…”이라고 했다. I군(15)은 “가출했다가 경찰한테 잡혀와 타임아웃방에 들어갔었다. 지금 있는 어떤 선생님도 말썽 피운 여학생의 머리채를 확 잡아채며 욕을 했다”고 말했다.

퇴소자와 원생들의 반응엔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같은 시설에서 살았는데 왜 그런 걸까. 원생 4명과 함께 취재팀을 만난 이 시설 출신 J씨(23)는 “다들 여기가 집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권위에 문제점을 얘기한 아이들도 이 집이 문 닫게 될까봐 불안해하고 있어요. 집이 좀 더 좋아졌으면 해서 그랬던 거래요. 폐쇄되면 어디로 가겠어요. 또 퇴소한 애들은 명절에 갈 데가 여기밖에 없어요. 여기가 고향이고 본가인 셈이죠. 걔들한텐 이 집이 없어지면 고향이 사라지는 거예요.”

◇인권위 “우리도 짠하지만… 그래도 인권은 보호돼야”=인권위 침해조사과 육성철 조사관은 “우리도 조사하면서 마음이 짠했다. 선교사 W씨의 후덕한 면도 봤고 원생 중에 좋게 진술한 아이들도 있었다. 시설 운영자가 나쁜 사람들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안타까워도 인권이 침해된 팩트는 부인하기 어렵다. 과거 사실이라도 그렇고, 최근에도 문제되는 대목이 있었다. 예를 들어 훈육을 위해 타임아웃방을 두려면 관련 기록이 있어야 한다. 뚜렷한 기준 없이 운영된 독방은 묵과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육 조사관은 “조사 당시 아이들은 혹시 시설이 없어질까 두려워했다”며 “그래서 우리도 시설이 폐쇄되지 않고 거듭나게 하자는 마음으로 결정문을 작성했다”고 말했다. 인권위가 아동기관을 고발하면서 총책임자(W씨)를 고발 대상에서 제외한 건 상당히 이례적인 결정이다. 그는 “반세기 동안 시설을 이끌어 온 분들의 노고를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인권은 보호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미나 박요진 기자, 제천=김동우 기자 min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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