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콘서트 ‘나쁜사람’ 흉내 경찰 속이려한 17세 전과 9범
입력 2013-05-05 18:35 수정 2013-05-05 22:54
“왜 그랬어?” 형사가 물었다.
“3살부터 고아원 생활을 하다가 원장이 학교도 안 보내주고, 매일 일만 시켜서 도망나왔어요.” 김모(17)군은 깊은 한숨과 함께 입을 뗐다. “막상 나오니 일을 구할 수도 없고, 배가 고파서 남의 물건을 훔치게 됐습니다. 이번이 처음입니다. 용서해주세요.” 김군은 굵은 눈물을 흘리며 선처를 호소했다.
김군은 지난달 28일 오전 4시30분쯤 서울 창신동 사우나에서 백모(44)씨의 스마트폰 등을 훔쳐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혜화경찰서에서 조사받으며 불우한 환경 탓에 어쩔 수 없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제 부모님을 찾을 수 있을까요?”라며 울먹이기도 했다. 담당 형사들도 “사연을 듣고 안타까워 마음이 울컥했다”고 말했다. 용의자를 체포했는데 불쌍한 사연에 결국 풀어주는 KBS 2TV 개그콘서트의 ‘나쁜 사람’ 코너에 나올 만한 이야기다.
하지만 김군의 진술은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김군이 아동 학대를 당한 줄 알고 해당 고아원을 수사하려 했지만 김군이 말한 ‘희망·행복고아원’이란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며 “동정심을 유발해 처벌 수위를 낮추려고 수를 쓴 것”이라고 말했다. 김군은 부모가 이혼한 뒤 아버지와 함께 살다 1년 전 가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초범이라는 것 역시 거짓이었다. 절도 등 전과 9범이었고 심지어 보호관찰소 지도·감독에 불응해 지명수배된 상태였다. 그는 생활비가 필요하자 청소년 쉼터에서 만난 다른 김모(14)군과 지난 3월부터 수도권 일대 찜질방과 PC방 등에서 15차례 1180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쳤다. 경찰은 5일 김군을 특수절도 혐의로 구속하고 공범 김군과 이들이 훔친 물품을 사들인 장물업자 이모(30)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