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3부)] 백발 된 광부들 “아직 살아 있구나” 손 맞잡고 눈시울

입력 2013-05-05 18:51 수정 2013-05-05 22:49


“이게 몇 년 만이야? 40년은 된 것 같아.” “아직 살아 있었나? 이 사람 백발이 다 됐구먼.”

“○○○는 지난달에 세상을 떴네.” “저런…나도 자네들 보는 게 이번이 마지막일지 모른다 싶어 베를린에서 여기까지 왔네.”

4일(현지시간) 광부·간호사 파독 50주년 기념식이 열린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에센의 졸페라인 강당.

수십년 만에 만난 광부들이 서로 손을 맞잡았다. 눈가에는 눈물이 촉촉이 맺혔다. 대부분은 백발이 되어 있었고 얼굴에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주름이 깊게 패어 있었다.

강당은 독일 미국 캐나다 등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파독 광부와 간호사 출신, 현지 관계자 등 1000여명으로 가득 찼다. 준비된 700석으로는 모자라 상당수는 서 있어야 했지만 이들은 3시간이 넘게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한 사람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50년 전인 1964년 12월 10일 함보른 탄광 강당. 당시 이곳에서도 이들은 모여 있었다.

독일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탄광을 찾은 것이다. 대통령의 선창으로 애국가 합창이 시작되자 250여명의 젊은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은 울었다.

50년이 흐른 이날 이들은 다시 애국가를 불렀다. 50년의 세월 동안 이들을 지탱해 준 것은 조국이었다. 지금은 독일과 어깨를 겨룰 정도로 잘살게 된 조국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들이 걸어온 길에 회상이 그들의 눈에 가득 담겨 있었다.

행사를 주최한 고창원 파독산업전사 세계총연합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여러분의 노고에 항상 감사하고 있다”는 인사말을 전했다. 이어 김재신 주독일 한국대사가 축사를 통해 “이역만리에서 파독 광부들이 청춘을 바쳐 캐낸 것은 석탄이 아닌 조국의 산업화를 위한 소중한 검은 금광”이라고 말했다. 광부들은 이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했다.

슈타트제크레타에린 캐이린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노동부 차관과 뷰어거마이스터 에센시장은 “부지런한 한국 사람들이 와서 지역경제 부흥에 큰 역할을 해준 것에 감사하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기념식에 앞서 광부와 간호사들은 과거 자신들이 일했던 옛 루르 탄광지대와 병원, 보훔 광산박물관 등을 찾았다. 미국 시카고로 떠난 뒤 46년 만에 옛 탄광 지역을 찾은 임영진씨는 “탄광 기숙사 건물이 여전히 남아 있어서 놀랐다”며 “어려울 때마다 이곳을 생각하며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오전에 보훔 광산박물관에 들른 광부들은 갱도를 둘러봤다. 지금은 폐광이 됐지만 광부들은 일하던 당시의 흔적을 보면서 감회에 젖었다. 김동경 글뤽아우프 수석부회장은 석탄을 채굴하던 컴프레서 기계를 작동하면서 “이걸로 일하고 나면 손목이 얼얼해 밤에 잠이 안 올 정도였다”며 “갱도 800m 아래에서 지열 때문에 장화에 땀이 흥건하게 차 비워내곤 했다”고 말했다.

쥐르게 슈크레츠만 보훔 광산박물관 부관장은 과거 광산 간부들이 입었던 옷을 직접 입고 나와 “한국과 독일의 공통점은 부지런하고 교육열이 높다는 것”이라며 “나는 아시아의 독일이 한국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부 참석자들은 한국 정부에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한 참석자는 “8000명의 광부와 1만명이 넘는 간호사들이 독일에 와서 젊음을 바쳐 국가 발전에 이바지한 것에 상응하는 국가적 예우를 굳이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큰 행사에 한국 정부에선 장관 한 명 보내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파독 광부는 63년 123명이 처음으로 독일 땅을 밟은 이후 77년까지 모두 7983명이 독일로 왔고, 간호사들은 모두 1만1057명이 독일에서 삶을 개척했다.

에센, 보훔(독일)=글·사진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