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김정기] 그리운 부모님의 터치

입력 2013-05-05 19:44


대학생이던 때 고향 집에 가는 첫날이면 아버님은 당신 옆에서 함께 자기를 원했다. 자리에 누워서는 이불 사이로 손을 뻗어 아들의 손을 잡았다.

신체를 맞닿는 일종의 터치 커뮤니케이션이었다. 좀 오랫동안 떨어지게 되는 전날에는 두 분 사이에 내 의사를 묻지 않고 잠자리를 미리 펴놓았다. 그럴 때면 양쪽으로 부모님의 손과 터치한 상태로 잠에 들었다. 결국은 혼자 자는 편안함을 선호하는 아들의 마음을 읽은 어머니의 응원으로 아버님의 공동 잠자리에 대한 바람은 역사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정은 한국인 특유의 문화가치

기억의 유산인지, 유전 성향 때문인지, 아니면 다시 재현될 수 없는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에서 기인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결혼을 하고 아내에게 일 년에 몇 번 정도 같은 장소에서 딸과 아들과 함께 잠자리를 하는 가치에 대해 주장하고 요청했다. 그러나 장거리 여행을 하는 동안 한 공간에서 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잘 실행하지 못했다. 이제는 공동잠자리에 대한 열정과 추진도 약해졌다.

공동의 공간보다는 개인의 편안함 위주로 바뀐 공간감각 선호에 심신이 익숙해진 탓일 게다. 하지만 터치의 쇠퇴는 아쉬운 일이다. 가족이나 타인과의 터치는 한국인이 독특한 유대감과 친밀감의 토대인 정(情)의 바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은 전통적으로 한국인의 심성과 타인과의 관계 형성, 유지, 발전의 핵심이다. 정은 한국인의 삶, 특히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관련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넓고 깊은 문화 가치이다. 그래서 정이라는 말에 기준하여 타인과의 관계를 가늠한다.

사람뿐만이 아니라 사물에도 정이 생기고 친근해진다는 의미는 ‘정이 든다’고 표현한다. 정성을 다해 사랑하고 애정을 기울이는 건 ‘정을 쏟다’이다. 상대가 싫어지고 만나고 싶지 않은 상태는 ‘정이 떨어지다’는 말로 대신한다.

‘정들자 이별’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아니하여 헤어지게 되는 경우를 이른다. 오랜 역사를 지닌 한국 사회의 희로애락애오욕이 형성한 정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불가능하지만 타인을 타인이라 여기지 않고 염려하고 헤아리는 마음으로 보면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인의 정은 유난하고 괄목할 다양한 에너지를 지닌다. 예를 들어 북한의 도발로 인한 6·25 동란의 폐허에서 한강의 기적을 리드한 대한민국의 교육열은 정의 유대감이 있어 가능했다. 그때 집안의 형제들은 고향산천을 떠나 낯선 도시의 공장에서 피땀 흘려 일한 대가를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다른 형제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송금하였다.

허리를 몇 번 펴지도 못하고 새우잠을 자야 하는 살인적인 노동을 하며 받는 쥐꼬리만한 봉급. 그것을 위해 그들은 청춘을 기꺼이 희생했다. 동생들을 교육시키고 결혼까지 시키느라 고단한 인생을 산 오빠와 누나의 사연은 흔한 이야기였다.

분단된 남과 북을 유일하게 터치하게 하던 개성공단이 풍전등화의 신세다. 폐쇄든 재개든 삼천리강산의 터치 전선에 빨간불이 켜졌다.

北과의 유대감 끊지 말아야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북쪽의 리더십, 무오류 존엄의 주술통치와 유훈통치에 이르면 평화롭게 잘 살아보려는 공생의 희망을 터치하려는 손에 힘이 빠진다. 공단을 착공한 게 2003년 6월이니 11년이나 되었고, 1971년 냉전시대에 개설한 이산가족상봉을 위한 채널로 치면 40년이 넘으니 충분히 ‘정을 쏟을 만한’ 기간이었다.

이쯤 되면 ‘정이 들어야 할’ 터인데 ‘정이 떨어진다’는 게 중론이다. 큰일이다. 이러나저러나 한국인을 한국인답게 하는 지혜로운 터치의 정은 이어가야 할 터인데….

김정기(한양대 교수·언론정보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