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윤필교] 골목길 끝에서 만난 세상

입력 2013-05-05 19:43


연둣빛 새순이 싱그러운 봄날, 친구와 함께 부산 여행을 다녀왔다. 당일 여행이라 부산에서 가볼 만하다는 명승지를 고루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가본 곳 중 감천동에 있는 감천문화마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골목 곳곳에 조성된 지역 예술가들의 조형작품, 사진 갤러리, 빛의 집 등 테마가 있는 다양한 집들과 미로처럼 얽힌 골목길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들이 이색적이었다. 한국전쟁 때 팔도에서 피난민들이 모여들면서 이루어진 감천문화마을은 산비탈에 계단 형태로 옹기종기 들어선 작은 집들이 그리스의 ‘산토리니’를 떠올리게 한다고 해서 ‘부산의 산토리니’라고 불린다.

2009∼2010년에 시행된 마을미술 프로젝트 ‘꿈을 꾸는 부산의 마추픽추’ ‘미로 미로 골목길’ 공모를 하면서 문화마을 만들기가 진행된 이곳은 독특한 마을 풍경과 분위기를 살려 도시 재생에 성공한 사례로 손꼽힌다. 이제 이곳은 한 해 1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부산의 명소가 되었다.

여기서 특히 나의 눈길을 끈 곳은 정겨운 골목길이다. 요즘 도시에는 재개발로 이런 풍경을 만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아름다운 골목길과 옛 모습이 그대로 보존된 특유의 경관으로 인해 수많은 사진가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마을에 들어서면 다채로운 무늬를 새긴 물고기 모양의 방향표지판이 길을 안내한다. 빈집을 개조해 테마별로 개성 있게 꾸민 집들은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그림 같다. 평화에 대한 기원을 담은 글들이 한쪽 벽면을 빼곡히 메우고 있는 ‘평화의 집’에 들어서면 작은 액자에 담긴 ‘평화, 다른 생각을 존중해 주는 것이다’라는 글이 보인다.

집들 사이에 미로처럼 나 있는 좁다란 골목을 걸을 때면 막다른 길 끝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골목을 돌아서면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곤 했다. 그래서 골목을 돌아설 때마다 ‘아, 인생에도 이런 반전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살다 보면 누구나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겪는다. 삶의 형태와 난이도만 조금씩 다를 뿐 파도치는 바다에 홀로 떠 있는 작은 조각배처럼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고, 앞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슬럼프에 빠져 열정을 잃었을 때,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아 같은 지점을 맴돌고 있을 때, 희망이란 작은 조각구름조차 보이지 않을 때….

‘그래도 인생은 반전이 있다’는 희망을 가지며 감천문화마을 골목 여행을 떠올려 본다. ‘골목을 돌아서면 새로운 세상이 보인다.’

윤필교 (기록문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