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담뱃값 찔끔 인상으론 금연효과 못 거둔다

입력 2013-05-05 19:37

우리나라 성인남성 흡연율은 2011년 기준 47.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그리스 뒤를 이어 두 번째로 높다. 흡연율이 높은 데는 싼 담뱃값이 큰 몫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담뱃값은 8년째 1갑당 2500원이지만 영국이나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8000∼1만원 수준이고 호주는 17달러, 캐나다는 10달러로 1만원을 넘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한국이 경제적 수준에 비해 효과적인 금연정책을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며 담뱃값 인상이 시급하다고 권고했다.

담뱃값을 현재보다 2000원 올리자는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의 지방세법·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이 이번 임시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고 6월 임시국회로 넘겨진 것은 아쉬움이 크다. 4월 재보선이 있어 눈치를 봤겠지만 정권 초기에 제대로 다뤄야 한다. 담뱃값 인상은 번번이 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눈치보기와 이해 당사자들의 반발에 밀려 8년이나 묶여 있었다.

국민건강은 안중에도 없고, 담배농가와 담배판매업체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듯한 기획재정부의 소극적 태도도 이해하기 힘들다. 기재부는 담뱃값의 급격한 인상보다 매년 또는 일정 기간별로 물가에 연동해 물가상승률만큼 담뱃값을 올리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한다. 물가연동제를 도입하면 담뱃값 상승폭은 10원 단위로 정해질 가능성이 큰데 이렇게 찔끔 올려선 금연정책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소비자들이 가격인상에 둔감해져 흡연율을 떨어뜨리지는 못하고 담배업체들만 배불리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

담뱃값을 인상하지 않은 지난 8년간 물가상승분에 연동해 올리더라도 고작 500∼600원 인상에 그쳐 흡연율을 낮추기 어렵다. 한국건강증진재단은 세계 120개 국가의 담배가격, 담배소비량, 소득, 금연정책 관련 자료 등 담배가격의 역수요함수를 분석한 결과 2011년 기준 우리나라의 적정 담배가격이 4500원 정도라고 밝힌 바 있다.

담뱃값이 급격히 오를 경우 물가상승이나 서민층 부담 증가 등 기재부가 우려하는 부분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렇더라도 국민건강이 우선이다. 담배로 인한 연간 사망자수는 3만여명, 이로 인한 의료비는 1조5633억원에 달한다. 의료계는 간접흡연으로 인한 진료비까지 포함하면 10조원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추정한다.

최근에는 여성, 청소년의 흡연율이 높아지고 있어 더 이상 개인의 선택에 맡겨둘 문제가 아니다. 국가가 나서서 자발적으로 담배를 끊지 못하는 흡연자들을 가격정책으로 도와줘야 한다. 서민들을 진정 위하는 것은 담뱃값을 적게 올려 가격부담을 낮춰주는 것이 아니라 금연을 도와줘 폐암 등 위험요인에서 구해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