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김준섭] 아베총리의 ‘아름다운 나라’
입력 2013-05-05 17:32
2006년 전후 최연소 총리가 되는 게 유력하게 여겨지던 때 ‘아름다운 나라로’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한 이래 아베 신조총리는 현재까지 수많은 연설 등에서 일본을 ‘아름다운 나라’로 만들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아베 총리가 일본을 ‘아름다운 나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계속 표명하고 있는 것은 그가 현재의 일본을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그가 가장 문제삼고 있는 것은 역사인식과 관련된 일본 정부의 입장이다.
첫째, 무라야마담화를 고수하고 있는 일본이 아베 총리의 눈에는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 패전 후 50주년에 해당하는 1995년 8월 15일에 발표된 무라야마담화는 일본이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의해 아시아 여러 나라에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고 하면서,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역대 일본 정부는 기본적으로 이 무라야마담화를 계승해 왔다.
그런데 아베 총리는 4월 2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아베내각으로서 이것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으며, 다음날인 23일에는 “침략이라는 것의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지지 않았으며, 국가 간 관계에 있어서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함으로써 무라야마담화를 계승할 뜻이 없다는 것을 한층 더 분명히 했다.
둘째, 고노담화를 고수하고 있는 일본 역시 그에게 있어서는 ‘아름다운 나라’가 아니다. 고노담화는 1993년 8월 당시의 관방장관 고노 요헤이가 발표한 것으로, 일본군 위안부의 모집, 위안소의 관리 등에 일본군과 관헌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했으며, 많은 경우 감언과 강압에 의해 모집돼 위안부 생활이 강요됐다는 점을 일본정부 차원에서 인정하고 사과한 담화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9월 16일 자민당총재선거 토론회에서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담화에 의해 강제로 군이 집에 들어가 여성을 유괴하듯이 끌고 가서 위안부로 삼았다는 불명예를 일본은 떠안고 있다”고 하며 “손자의 시대까지 이 불명예를 떠안게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11월에는 일본의 우파지식인들이 미국 지역신문에 게재한, 위안부 모집에 강제성이 없었다는 내용의 의견광고에 찬동자로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셋째, ‘자학사관’에 입각한 교육이 행해지는 일본은 아베 총리에게 있어서 결코 ‘아름다운 나라’가 아니다. 이와 같은 그의 생각은 “여전히 자학사관에 입각한 교과서가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교과서검정제도와 소위 ‘근린각국조항’(근현대사 기술에 있어서 한국, 중국에 배려를 해야 한다는 교과서 검정기준의 조항)의 개정을 주장하는 지난해 자민당의 선거공약집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 그리고 지난 4월 10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아베 총리는 이 공약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표명했다.
이처럼 현재 일본을 아름답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것들이 고쳐지면 아베 총리에게 있어서 일본은 ‘아름다운 나라’에 한 걸음 다가가게 될 것이다. 이 ‘아름다운 나라’의 아이들은 일본이 어떠한 침략을 한 적도 없었다는 교육을 받으며 자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자부심을 가진 국민들로 구성될 미래의 일본이 다른 나라 사람들의 눈에도 ‘아름다운 나라’로 비쳐질지에 대해 아베 총리와 일본의 정치인들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독일의 바이츠제커 대통령은 1985년 행한 연설에서 “과거에 대해 눈을 감는 자는 결국 현재에 대해서도 눈을 감게 된다. 비인간적인 행위를 마음속에 새기려고 하지 않는 자는 또 그와 같은 위험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이 명연설의 의미를 되씹어 봐야 하지 않을까?
김준섭 국방대 안보정책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