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고사 대신 진로탐색… “꿈을 디자인해요”

입력 2013-05-05 17:57


서울 연희중학교 1학년 33명, 삼성디자인경영센터에 간 까닭은

“얘들아, 너희는 디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인생이요” “삶의 모든 것이요,” “장난감이요.”

2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사 15층 디자인경영센터 대회의실. ‘디자인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박수진 삼성전자 디자인센터 책임의 말에 여기저기서 뜻밖의 대답이 튀어나왔다. ‘갤럭시 S’시리즈, 보르도TV 등 삼성전자를 대표하는 제품들의 디자인을 탄생시킨 디자인경영센터에 교복을 입은 학생들과 외부인이 들어온 건 센터가 생긴 이후 처음이었다. 이날 중간고사를 보는 대신 삼성전자로 직업체험활동에 나선 서울 연희중학교 1학년 학생 33명은 난생 처음 ‘디자인과 기술의 융합’에 대한 PPT를 보며 디자인에 대한 관심을 숨기지 않았다.

“세계적인 기업인 삼성전자에 꼭 와보고 싶어 신청했다”는 김량현(13)군은 “자유롭게 바닥에 둘러앉아 디자인과 기술의 융합을 토론하는 PPT속 MIT 미디어랩의 모습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고 말했다. 친형을 따라 패션 디자이너가 꿈이라는 이유빈(13)군은 “한식과 양식이 결합돼 퓨전음식이 되는 사진을 보며 디자인과 IT기술이 합쳐지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니 너무 재미있다”며 “앞으로 패션 디자인에도 IT기술을 접목할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벌집 모양으로 이뤄진 디자인센터 사무실을 거쳐 출시 전 제품의 사진을 찍는 8층 포토 스튜디오를 방문한 학생들은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스튜디오의 특별한 조명이 신기하다”며 연신 곡선으로 이뤄진 스튜디오를 매만지던 설대훈(13)군은 “이 곳에서 갤럭시S4도 출시되기 전 촬영을 했다고 하니 나도 여기서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며 친구들과 단체로 포즈를 취했다.

◇“나도 삼성전자 취직하고 싶어”=이어 19층 디자인정보자료실에 도착한 학생들은 탁 트인 전망 속 디자인에 관한 각종 책들과 DVD로 가득한 공간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디자인정보자료실 백진경 사서는 “이곳은 늘 새로운 디자인을 고민하는 디자이너들을 위해 설계된 맞춤 도서관”이라며 “디자이너들의 자유롭고 창의로운 생각을 돕기 위해 바깥을 시원하게 내다볼 수 있는 큰 창과 숲 속에서 가져온 듯한 큰 나무도 갖다놓았다”고 설명했다. 테이블에 놓여있던 영문 디자인 서적을 들춰보던 이재헌(13)군은

“사무실하면 딱딱한 책상만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카페 같은 곳에서 여유롭게 일할 수 있는 곳이 있는지 몰랐다”며 “평소에 휴대폰 소프트웨어에 관심이 많은데 나중에 삼성전자에 꼭 취직하고 싶다”고 말했다.

학생들과 함께 직업체험에 참여한 김용구 연희중 교사는 “중간고사 대신 이렇게 직업체험을 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학부모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렇게 현장에 나와 보는 것이 장차 학생들에게 더 도움이 될 것이라 본다”며 “평소에 까불기만 했던 학생들이 진지한 모습으로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니 놀랍기도 하다”고 웃음지었다. 이날 하루 종일 학생들에게 회사 곳곳을 견학시키며 학생들의 ‘꿈 멘토’로 나선 삼성전자 홍보팀 석원기(33)씨는 “저도 중학교 1학년 때 이런 기회가 있었다면 다양하고 많은 경험을 해봤을 것”이라며 “꿈 멘토 역할을 하다보니 나 자신이 중학교 1학년 때 가졌던 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연희중 310명 66곳에서 진로·직업 체험=‘중1 진로탐색 집중학년제’ 연구학교로 선정된 연희중은 이날 1학년 310명이 참가한 ‘청소년 진로직업체험의 기적’ 행사를 서울 66곳에서 진행했다. 연구학교로 선정된 서울 지역 11개 중학교의 1학년 학생들은 지난 3월부터 50일간 시험 부담에서 벗어나 각종 직업을 체험하고 진로를 탐색한다. 학생들은 이날 3∼10명 단위로 그룹을 이뤄 박물관, 동물병원, 카페, 은행, 장애인 재활센터, 약국 등 다양한 일터를 체험했다. 최근 청소년들 사이에서 장래희망 1위로 꼽히는 ‘연예인’ 지망 학생 10명은 서울 여의도동 탑스타 연기학원을 찾았다. 학생들은 발성 연습과 대본 읽기를 처음 해보는 탓에 처음에는 쑥스러워하며 나서기 꺼렸지만, 점차 흥미를 붙이면서 멘토의 말에 주의를 기울였다.

바리스타를 체험해보려고 서울 북가좌동의 커피 전문점을 찾은 학생들은 원두가 커피로 재탄생되는 과정을 배우고 자신이 마시고 싶은 커피를 만들어봤다. 5명의 학생은 바리스타 멘토 주변에 모여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본 뒤 직접 커피와 우유 등을 섞어 카페라테나 캐러멜 마끼아또를 만들었다. 어떤 커피를 가장 좋아하는지, 어떤 커피가 가장 잘 팔리는지 등 소소한 질문부터 바리스타가 되려면 어떤 학과를 가는 것이 좋고 필요한 자격증은 무엇인지 등 질문이 이어졌다.

서대문경찰서 남가좌파출소를 찾은 5명의 학생은 가스총과 수갑 등 경찰 장비 사용법을 배웠고 직접 수갑을 차보기도 했다. 학생들은 ‘남가좌동에 버려진 오토바이가 있다’는 가상의 상황으로 신고를 받은 뒤 순찰차 모니터에 현장파견 지령이 떨어지는 과정을 지켜봤다. 장래희망이 경찰이라는 황문경 양은 “직접 무전도 해보고 순찰차를 타고 지역을 돌아보니 매우 신기했다”고 말했다.

이날 삼성전자 디자인경영센터에서 열린 직업체험 교육 프로그램에 참관했던 문용린 교육감은 “학생들이 이번 기회를 통해 꿈이 생기고 영글어가길 바란다”며 “단순히 체험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피드백을 통해 직업체험 프로그램을 더욱 심화·보완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수현 기자 siemp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