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저임금 의류공장 논란… “노예노동 착취” VS “여성해방 도움”

입력 2013-05-03 18:47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인근 사바르 의류공장에서 발생한 건물 붕괴사고가 저임금을 무기로 한 개발도상국의 의류산업 전략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개도국 근로자의 저임금을 바탕으로 서구 대형 유통업체나 패스트패션 업체가 이득을 챙기는 현실이 사고의 근본원인이라는 것이다.

반면 일부에서는 개발도상국 여성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여성 해방을 돕는 의류산업의 역할을 무시하고 있다며 반론을 펴고 있다.

◇“노예노동은 신을 거스르는 행위”=의류공장 건물 붕괴로 48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지 8일 만인 2일 가동을 멈췄던 공장은 하나둘씩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

하지만 정작 비난의 대상이 됐던 서구 원청업체는 하도급을 끊고 방글라데시에서 탈출하고 있다. 세계 최대 라이선스 보유업체인 월트디즈니는 이번 주 홈페이지를 통해 더 이상 방글라데시에서 생산된 제품에 자사 상표를 붙여 판매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당초 방글라데시에서 생산된 스웨트 셔츠는 월마트에 납품할 예정이었다. 미국 소매 유통업체 타깃(Target)과 나이키도 방글라데시의 공장 숫자를 줄였다.

200억 달러 규모의 의류산업은 방글라데시 수출의 80%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높다. 종사자만도 300만명, 관련 공장은 5400개에 달한다. 인도네시아(2400개), 베트남(2000개)에 비해서도 압도적으로 많다.

이 때문에 서구 원청업체의 철수 분위기는 정치권에서 달가울 리 없다. 셰이크 하시나 방글라데시 총리가 직접 나서 원청업체를 설득했다. 그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다국적 기업이 방글라데시에 투자하는 이유는 질 좋은 노동력이 아닌 값싼 노동력 때문”이라며 “방글라데시는 노동 친화적”이라고 강조했다. 유명 브랜드 업체가 방글라데시 기업과 계약을 취소하고 경쟁국인 인도나 베트남 등으로 물량을 주문하려는 움직임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 달에 38유로로 생활하는 것은 노예노동”이라며 “회사 재정을 이유로 정당한 임금을 주지 않거나 일감을 주지 않으면서 이윤만을 쫓는 것은 신을 거스르는 행위”라고 규탄했다. 저임금을 지급하며 노동을 강요하는 것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인 것이다. 지난 3월 취임한 교황이 노동자의 권익에 이토록 강경한 목소리를 낸 것은 처음이다.

◇저임금은 여성 해방의 출발점?=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 대책으로 서구 원청업체들이 계속 계약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프리마크와 망고 등 원청업체가 위험문제 등을 이유로 하도급 업체를 다른 곳으로 옮기기보다는 방글라데시 여성에게 계속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직상태나 농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의류공장에서 일하는 게 더 높은 소득을 보장해 여성 해방을 촉진시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하원 세입위원회 샌더 레빈 의원도 “서방 브랜드 업체의 철수는 일자리를 없애고 국민을 더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여성 고용으로 자연스럽게 빈곤율까지 떨어지는 만큼 고용 유지가 중요하다는 논리다. 실제로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섬유산업으로 인해 방글라데시의 빈곤율은 1992년 60%에서 최근 30%까지 떨어졌다.

다만 신문은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노동조합의 결성을 허용해 근로자의 권익을 찾아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글라데시는 최저임금에 대한 기준이 없고 의류 노동자의 조합 설립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라나플라자 붕괴사건은 초기 노동자들이 건물 이상징후를 알렸지만 회사와 건물주는 이를 무시했다. 조직된 노동자의 목소리가 있었다면 대형사고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일부에서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경쟁국인 베트남 등을 눈여겨봐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베트남 역시 의류 수출에 의존도가 높은데 노동환경과 관련 노동법은 상당히 엄격하기 때문이다.

노동자연대 방글라데시 센터 책임자인 칼프로나 액터는 “방글라데시 의류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보다 엄격하고 강제적인 법 적용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시나 총리도 성난 민심을 의식해 “현재 노동환경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며 이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