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아웃] 손 맞잡은 씨름단체 모래판에도 신바람 불어오려나
입력 2013-05-03 18:32
“으랏∼차앗∼차핫∼찻찻찻! 쿵…”
신분이 달라 보이는 두 사나이가 용을 쓴다. 숨소리가 거칠고 땀방울이 튄다. 들어 올리는 사람과, 한 발이 들려 곧 넘어지려는 사람의 표정이 안쓰럽다. 구경꾼도 두 패로 갈라져 팽팽하다. 표정만 봐도 누구 편인지 금방 알 수 있다. 곧 승부가 날 것 같은 흥미진진한 순간인데도 엿판을 둘러맨 떠꺼머리총각은 버젓이 장사에 열중이다.
보물 제 527호로 지정된 단원(檀園) 김홍도의 ‘씨름도’ 얘기다. ‘단원풍속도첩’에 들어있는 명품 중의 하나다. 이 한 장의 그림에는 신분을 뛰어넘은 정정당당한 승부와 피곤한 세상살이의 아픔을 그 자리에서 털어내는 서민들의 해학이 묻어 있다. 자세히 보면 씨름꾼 두 명이 벗어놓은 신발은 짚신과 고무신임을 알 수 있다.
흔히 우리 민족의 특성을 얘기할 때 은근과 끈기를 든다. 샅바를 잡고 경기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절제된 은근함이 풍기고, 싸움을 전개하는 동작에서는 치열함과 끈기가 불꽃처럼 타오른다. 씨름이 우리 민족의 숨결 속에 터전을 잡고 면면히 뿌리를 내린 것은 농경사회에서 누구나 쉽게 어울리고 호흡할 수 있는 놀이였기 때문이다. 시공간의 제약을 크게 받지 않는 까닭에 저잣거리나 나루터, 강변 백사장 등지에서 씨름꾼과 구경꾼이 한데 어우러져 흥겨운 난장판을 벌였다. 민초들은 한 순간이나마 삶의 고달픔을 달랠 수 있었다.
이렇게 유구한 세월 동안 우리 민족의 생활상을 대변하던 씨름은 일제에 민족 주권을 상실하면서 한동안 침체의 늪에 빠지기도 했다. 해방을 계기로 소생하기 시작한 씨름은 1970∼80년대를 거치면서 부흥기를 마련했다. 1983년부터는 프로 씨름이 생겨났다. 천하장사 이만기와 강호동 같은 걸출한 씨름꾼들을 배출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씨름에 대한 국민적인 인기가 하락하며 민족 고유의 국민운동은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땅에 추락하던 씨름이 다시 부흥을 노리고 있다. 갈라섰던 대한씨름협회(박승한 회장)와 한국씨름연맹(김용수 총재)이 2일 서울 세종로 프레스센터에서 2006년 이후 명맥이 끊긴 프로 씨름대회를 내년부터 열기로 하는 발전안을 발표했다. 우선 올해엔 지역 단체전을 시범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아울러 ‘씨름 중흥’을 위해 ‘씨름 승단제’ 도입도 추진한다. 아무튼 좋다. 두 단체는 우여곡절 끝에 생기를 찾은 민속씨름을 또다시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로 들여보내는 우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란다.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