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는 52년전 돈 빌리러 갔던 미국…박근혜는 경제 동반자 되어 찾는다

입력 2013-05-03 18:24 수정 2013-05-04 02:06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은 첫 방미 때 백악관에서 존 F 케네디(JFK) 전 대통령을 만났다. 52년의 세월이 흘러 그의 딸이 대통령이 됐고 오는 7일(현지시간) 같은 장소에서 ‘블랙 케네디’로 불리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갖는다. 오바마 대통령은 40대에 대통령이 됐고 개혁을 상징하는 젊고 진취적인 이미지가 비슷해 JFK와 종종 비교된다.

반세기 전과 이번 정상회담은 안보와 경제가 주요 의제라는 점에서 닮았지만, 한국 정상의 위상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던 박 전 대통령이 1961년 미국을 방문한 주요 목적은 한국에 대한 우선적인 차관 및 경제원조 요청과 함께 5·16 군사쿠데타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이었다. 헌법상 국가원수는 아니었지만 국빈 자격으로 미국을 찾았던 박 전 대통령은 그해 11월 14일 두 차례 정상회담에서 베트남전 파병까지 제안하며 “미국 원조를 받는 입장에서 무조건 도와달라는 게 아니라 한국처럼 자립 의지가 있는 나라에 우선적으로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1917년생 동갑내기 JFK는 매몰차게 거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JFK 앞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담배를 피우던 박 전 대통령의 당당한 모습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65년과 69년 각각 미국을 방문해 린든 존슨,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회담했다.

당시 ‘빈손’으로 쓸쓸하게 돌아온 아버지를 맞으며 나약한 국력을 실감했을 박 대통령은 이번 방미에서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오바마 대통령과 한·미 동맹과 북한 문제 등 전 분야에 걸쳐 대등한 위치에서 의견을 나눌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2007년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의 ‘존 F 케네디 주니어 포럼’ 초청 특강에서 “대한민국이 새로운 안보 질서의 도전에 직면한 상황에서 그 딸이 케네디 스쿨을 찾아왔다”며 박 전 대통령과 JFK의 회담을 거론한 적이 있다.

가족을 동반하지 않고 외로운 출국 길에 올랐던 박 전 대통령처럼 미혼인 박 대통령도 홀로 미국을 찾는다. 다만 세계적인 규모로 성장한 든든한 우군인 국내 기업인들이 대거 박 대통령과 동행한다. 미국 기자협회, 외교협회, 아시아협회에서 연설을 했던 아버지와는 다르게 딸은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마이크를 잡는다. 워싱턴 한국전 참전기념비 헌화, 한국 출신 국제기구 수장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김용 세계은행 총재 면담도 박 전 대통령 때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정이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