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노트-백소영] ‘너머’의 소망
입력 2013-05-03 17:49
“저는 지금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종교의 기원에 대해서 설명하던 때였습니다. 사람들은 언제 ‘너머’를 그리게 되었을까. 육체적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믿게 되었을까.
수업시간에 종교의 기원이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되었음을 설명하던 중간이었죠. 이제 겨우 스물두 살의 예쁜 여대생이 그러는 겁니다. 죽는 것이 무에 그리 무서운 일이냐고. 취직 시험 보느라 마음 졸이고, 들어간 회사에서도 매년 정리해고당하지 않을까 초조해하며 사느니, 그나마 대학생 시절에 생을 마감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그 말이 제 가슴에 박혔습니다. 이 삶을 사는 동안 현재 ‘너머’가 그다지 소망스럽지 않다는 젊음이 안타까웠습니다.
차라리 영원에 대한 그리움이라도 사무치면 조금은 위로가 될 터인데…. 죽음 ‘너머’도 부담이요 짐이라 사양하겠답니다. “그냥 사라져버렸으면 좋겠어요.” “아무 느낌도 없고 아무 생각도 없이 그렇게 흩어져버리는 것이 가장 행복할 거 같아요.” 아…어쩌면 좋을까요. 이 땅에서의 소망도, 너머에 대한 그리움도 없이 삶 자체, 존재함 자체가 버겁다고 아이들은 말합니다. 들을수록 제 마음의 그림자는 깊어만 갑니다.
다음 과제, 그 다음 과제 그리고 또다시 주어지는 더 높고 더 많은 과제…. 숨쉴 겨를도 없이 몰아치는 이런 방식의 삶으론 어림없지 싶습니다. 아이들이 ‘너머’를 소망하게 되는 것, 그리고 ‘영원을 그리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 말입니다. 소망과 그리움은 일상을 달리던 걸음을 잠시 멈춘 뒤에야 비로소 생겨나는 감정이니까요. 아이들을 쉬게 하자. ‘너머’를 소망하고 ‘영원’을 그릴 수 있는 시간을, 공간을, 여유를 주자. 가정의 달 5월을 열며 한 달만이라도 아이들에게 ‘너머’를 그리도록 그 무엇이 되었든 일상 ‘너머’의 체험을 선물하면 어떨까요?
백소영 교수(이화여대 인문과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