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환의 해피 하우스] 숲속 수업
입력 2013-05-03 17:49
어느 해 5월이었다. 강의실 창밖으로 보이는 숲이 너무 아름다웠다. 연한 초록빛 신록이 싱그러웠다. 나는 문득 학생들에게 “우리 나가서 숲속 수업을 할까요?”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신이 났다. 그리고 ‘숲속 수업’은 ‘계절의 여왕’ 5월이 오면 해마다 계속되었다. 나의 ‘숲속 수업’은 언제나 장 지오노(Jean Giono)의 ‘나무 심은 사람’ 이야기로 시작된다.
프랑스 남부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다. 그는 불행하게도 외아들과 아내가 죽어버리자 더는 살고 싶지 않아 평생 가꿔온 농장을 팔아버렸다. 그리고 모든 것을 버리고 외진 곳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물이 나오지 않아 황무지나 다름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떠나버리고 숯 굽는 숯쟁이가 홀로 남아있었다.
외로웠던 노인은 이곳이 더 황폐해지리라 생각돼 나무를 심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도토리 한 자루를 구해서, 매일 잘생긴 것 백 개씩을 골라 심었다. 이렇게 3년 동안 10만개를 심었다. 황무지에 나무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는 이 땅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그저 묵묵히 나무를 심었다. 변화가 워낙 서서히 일어나서 노인이 한 일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자연의 조화라고만 생각했다. 길이 11㎞, 폭 3㎞의 숲이 세 곳이나 조성되었다.
1910년에서 1945년 사이에 이 외로운 노인은 떡갈나무, 너도밤나무, 단풍나무, 자작나무, 오리나무 등을 수십만 그루씩 심었다. 이 노인의 이름이 바로 엘제아르 부피에(Elzeard Bouffier)이다. 그는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을 남겨두고 1947년 89세를 일기로 하늘나라로 돌아갔다. 황무지는 다시 물이 흐르기 시작하고 풀밭이 생겨나고 꽃이 피어났다. 마을의 무너진 집터에 새집들이 들어섰다. 젊은 세대들이 이사를 오고 아이들이 풀밭에서 뛰어놀았다. 마을에는 다시 웃음이 넘쳐났고 축제도 열렸다. 그러나 누가 이곳을 이렇게 바꿔놓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이 이야기는 매우 감동적이다. 그렇지만 나는 학생들이 이야기 속에 숨어있는 인생반전이라는 패러독스를 발견하기를 원했다. 카운슬링 관점으로 분석하면 이렇다.
한 농부가 인생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그는 젊지도 않으며, 교육도 받지 못했다. 외아들과 아내를 잃었으니 몹시도 불행한 사람이다. 혼자서는 농장을 관리할 수도 없고, 할 마음도 없었다. 농부는 너무 큰 트라우마로 세상을 등지고 싶었다. 마침내 그는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상처 입은 짐승처럼 외딴 산속으로 숨어든다. 나무에 목매 죽더라도 사람들은 “불쌍한 사람, 운명이 너무도 가혹했어”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패러독스가 시작된다. 노인은 이곳이 완전히 사라질 것을 ‘알았다.’ 나무를 심기로 ‘마음먹었다.’ 사실은 “이 마을 따위는 없어져도 좋아. 내가 알 바 아니지. 사랑하는 나의 가족은 모두 죽었다. 땅도 내 것이 아닌데….”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노인은 마음먹고 나무를 심었다.
인생반전을 위해서 반드시 깊은 ‘깨달음’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패러독스는 ‘마음먹기’로써 충분하다. 그는 끔찍한 일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주 대신 축복을 돌려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마음먹기는 쉬운 것이기도 하고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마음먹기 하나로 모든 것이 달라진다. 인생의 비극이 사라지고 승리가 펼쳐진 것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던 그에게 평안과 건강이 보답으로 주어진다. 한때 목숨을 부지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했던 그가 이젠 꽃 피고 향기 나는 세상을 맛보게 되었다. 세상을 등지려던 그가 예상치도 못한 불멸의 업적을 남긴다. 마음먹기에 따라 낙원 출구가 입구로 뒤바뀐다. 우리의 마음가짐은 지옥을 천국으로 바꾸는 놀라운 힘을 지니는 것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는 말씀은 바로 그런 의미이다.
<서울신학대학교 상담대학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