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토크] 스트레스의 패러독스
입력 2013-05-03 18:46
지난해 이스라엘 히브루 대학 연구진은 흥미로운 실험결과를 발표했다. 초원에 우리 두 개를 설치한 뒤 한 곳에는 메뚜기만, 그리고 다른 우리에는 메뚜기와 그들의 포식자인 거미(입을 봉한 상태)를 함께 집어넣었다. 이렇게 기른 메뚜기들이 수명을 다해 죽자 사체를 각기 따로 모은 후 낙엽과 함께 땅에 뿌렸다.
그로부터 90여 일이 지난 후 살펴본 결과 거미와 함께 산 메뚜기의 사체에 뿌려진 낙엽은 그렇지 않은 메뚜기의 것에 비해 2배나 덜 썩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거미와 함께 살면서 표출된 메뚜기의 스트레스였다. 포식동물의 위협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경우 대부분의 동물들은 몸의 구조를 이루는 질소보다 몸의 에너지 출력을 신속히 높일 수 있는 고탄수화물 먹이를 우선 섭취하게 된다. 질소는 유기물 분해 효소 생성에 필요한 성분인데, 이것이 부족하니 낙엽이 잘 썩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다. 심혈관계 질환과 치매를 유발하며, 당뇨·피부질환·면역체계를 비롯해 정신 관련 질환에도 영향을 미친다. 위 메뚜기 실험은 스트레스가 사후 토양의 미생물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그런데 위의 실험과 비슷한 사례로 ‘메기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미꾸라지가 사는 곳에 메기 한 마리를 풀어놓으면 미꾸라지들이 훨씬 활기차게 움직이고 번식을 많이 해서 조직 전체가 건강해진다는 것.
도덕경에 ‘귀생사지(貴生死地)’라는 말이 있다. 몸은 귀하게 여길수록 더 나빠진다는 뜻이다.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 삶 자체가 스트레스일 것이다. 때문에 적절한 스트레스가 오히려 삶을 건강하게 해준다고들 한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연구진은 이를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연구성과를 내놓았다. 쥐를 대상으로 약한 전기자극을 주는 스트레스 실험을 한 결과, 스트레스를 받은 개체가 그렇지 않은 개체보다 기억을 조절하는 해마의 뇌세포를 2배 이상 많이 생성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 실제 기억력 테스트에서도 스트레스를 받은 쥐는 2주 뒤 특정 행동에 반응할 만큼 기억력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 스트레스는 독일까, 약일까. 적절한 스트레스가 약이 된다면 그 적절함의 기준은 어느 정도일까. 그것은 아마 우리가 스트레스를 적으로 대하는가, 아니면 인생의 한 부분으로 대하는가에 달려 있지 않을까 싶다.
이성규(과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