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찬 이집트 10세 소녀… 교육장관 앞서 무르시 정권 비판 시 낭독
입력 2013-05-03 00:21
“축제를 위해 잡으려던 양(羊)이 내게 엉덩이를 들이미네…도리어 날 잡으려 하네….”
이집트 초등학생 소녀가 교육부 장관 앞에서 낭독한 창작시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정부 고위 관료 면전에서 10세 소녀는 돌연 무함마드 무르시 정권을 비판하는 시를 당차게 읽어 내려갔다.
영국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하비바 야야 압둘모네임(사진)이란 이름의 이 소녀는 원래 학교를 방문한 이브라힘 데이프 교육장관 일행을 위해 전통 서사시를 낭독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환영식 학생 대표로 나선 압둘모네임의 입에선 생소한 시구가 흘러나왔다. 전국 시낭송 대회 우승자답게 소녀는 아랍권 특유의 다채로운 손짓과 강조된 표정연기까지 곁들였다.
압둘모네임은 무르시 정권의 기반인 ‘무슬림형제단’ 지지자들을 ‘아둔한 양떼’로 풍자하며 “큰 대가를 치를 것이다. 내가 너를 양구이로 만들고 네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없앨 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를 통해 날선 비판을 이어가던 초등학생 소녀는 “네 양털이 너를 따뜻하게 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냉소하면서 “나를 원한다면 은행계좌를 갖고 있어야 할 것”이라며 격앙된 낭독을 마무리했다.
텔레그래프는 환영식장에 모인 사람들이 다소 은유적인 표현들을 단번에 알아챘다고 당시의 분위기를 전했다. 돌발상황에 당황했을 법한 데이프 장관은 낭독이 끝나자 짐짓 박수까지 치며 압둘모네임을 향해 농담을 섞어 “우리(정권)가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는 말로 상황 수습에 나섰다. 화제가 된 자작시는 아마추어 시인으로 활동하는 소녀의 아버지가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을 비판하기 위해 쓴 것으로 밝혀졌다.
소녀의 ‘낭독 사건’이 널리 알려지면서 압둘모네임 가족은 졸지에 유명세를 탔지만 무슬림형제단 지지자들로부터 협박과 욕설에 시달리는 처지가 됐다. 그럼에도 어린 소녀는 여전히 의연한 모습이다. 압둘모네임은 알아라비아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나라에 정의와 평화가 없어지고 있다”고 지적하며 대통령에게 “조금만 더 생각을 한다면 우리는 크게 발전할 수 있다”는 당부의 말을 전했다.
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