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카페] 깐깐해도 너∼무 깐깐한 노 공정위원장

입력 2013-05-02 18:38


신임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은 ‘빨간 펜 선생님’이다. 밑에서 올라오는 보고서를 꼼꼼히 읽어보는 것은 물론 토씨와 띄어쓰기까지 일일이 첨삭하는 탓에 붙여진 별명이다.

그는 최근 한 부서에서 올린 보고서의 ‘감사원 지적에 따라∼ 이행했다’라는 문구를 ‘감사원 지적대로∼’로 정정했다. 노 위원장의 꼼꼼함은 지난달 23일 있었던 취임식 당일부터 나타났다. 공정위는 노 위원장의 취임사를 1시간 사이 3번이나 변경해 출입기자들에게 배포했다. 최초안과 수정안, 최종안을 비교해본 결과 ‘안되므로’를 ‘안 되므로’로 띄어쓰기가 고쳐지거나,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은 문장이 내용은 그대로인 채 주술구조가 바뀌는 등 ‘정교한’ 수정작업이 이뤄졌다.

공정위 직원들은 같은 기획재정부 출신이지만 전임 김동수 위원장과 180도 다른 스타일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고 있다. 특히 공정위 내부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페이퍼(보고서) 작성의 1인자’로 불리는 모 간부가 작성한 보고서에 대해 노 위원장이 실망감을 표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긴장 강도는 더 세지고 있다. 일부 간부는 노 위원장을 오랫동안 겪어 본 기재부 지인들에게 노 위원장이 싫어하는 단어 등 ‘안 깨지는 법’ 노하우를 전수받기도 했다.

노 위원장과 호흡을 맞춰본 기재부 간부들의 반응은 “달라진 게 없네”가 대부분이다. 한 관계자는 2일 “예전에 한 보고서에 ‘필요’라는 단어를 넣었다가 ‘필요하니까 보고서를 쓰는 건데 왜 이 단어가 필요하냐. 필요를 빼면 다른 필요한 단어를 하나 더 넣을 수 있지 않냐’고 깨진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공정위 일부에서는 “꼼꼼한 게 아니라 너무 깐깐한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장관이 됐으면 보다 큰 그림을 그리는 데 집중해야 하는데 ‘숲은 보지 않고 나무만 본다’는 것이다.

노 위원장을 상관으로 뒀던 정부 관계자는 “페이퍼에 대한 취향은 식성과 같다”며 “사람의 식성이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에 음식을 만드는 사람(공정위 직원)이 결국 맞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