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판 안네의 일기’ 16세 무함마드의 詩 같은 기록들
입력 2013-05-02 18:26 수정 2013-05-02 23:33
국민일보 박유리 기자, 레바논 난민촌을 가다
열여섯살 시리아 소년 무함마드의 꿈은 의사다.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인근 아드라에 살던 무함마드 가족 12명은 난민을 꽉 채운 승합차를 타고 3개월 전 국경을 넘었다. 지금 레바논 국경지대 베카계곡에 살고 있다. 박스와 나무 조각, 담요로 만들어진 난민 텐트가 무함마드의 집이다.
지난달 16일 집에서 만난 소년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대신 선뜻 일기장을 내밀었다. 시를 쓰는 아버지를 닮아서일까, 일기는 운문체에 가까웠다. 사무친 두려움을 산문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었는지 모른다. 날짜가 없는 일기장(사진)에는 ‘물품들: 껌, 배터리, 모자’처럼 일상생활에서 쓴 메모도 눈에 띈다. 조국을 그리는 마음, 죽음과 맞닿은 공포, 시리아의 독재자 바샤르 알 아사드에 대한 분노, 사춘기 소년의 무너진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했다. 내전 2년여 동안 7만명이 죽어나가는데도 ‘레드라인(금지선)’ 운운하며 머뭇대는 미국 등 국제사회에 대한 서운함마저 배어나온다. 자신 같은 시리아 난민들을 국제사회에선 ‘가시’로 느끼리라 씁쓸해하면서. 하지만 고국으로 돌아가려는 희망의 끈은 절대 놓지 않았다.
1. 헬로 아니면 굿바이, 헬로 아니면 굿바이…. 내 생각을 떠나지 않는 질문이야. 내가 헬로라고 말한다면, 이 문장을 어떻게 끝내야 할지 모르겠어.
가끔은 태양과 하늘이 행복하게 보여. 가끔은 그것들이 슬퍼 보이기도, 가끔씩 미친 것 같기도, 때로는 이성적으로 보이기도 해.
나는 세상에서 아주 작은 사람이었어. 가장 작은 사람 중 한 명. 지금은 이토록 따분한 세상에서 한 명의 벙어리가 됐어. 아니, 벙어리보다 더욱 말할 수 없는 사람. 시리아에선 위험한 사람들을 피해 숨어 지냈어. 그래도 행복하고 건강했는데 지금은 더욱 비참해지고 말았어. 난 지금 아무것도 모르는 곳으로 가고 있어.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나는 혼잣말을 지껄이는 미친 사람일까, 아니면 글을 쓰는 이성적인 사람인 걸까.
2. 많은 소음이 나를 둘러쌉니다. 나를 괴롭게 합니다. 지나가기 어려운 울퉁불퉁한 길들이 많아요.
우리는 개처럼 되었지요. 무언가를 좇고 찾으려 하지만 우리에게 적절한 그 어떤 것도 찾을 수 없어요. 우리는 사람들 속에서 가시가 되었어요.
나는 조국에서 새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어요. 조국의 새들은 떠다니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피의 강이 흐르고, 부서진 인간의 심장이 흩어져 있습니다.
3. 내가 고국을 떠나기 전에는, 비참한 삶을 살기 전에는, 굴욕적인 삶을 살기 전에는 자랑스러운 인생을 살아왔다. 나의 조국, 나의 집에서 꿈의 첨탑과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멋진 사람들처럼. 하늘에 닿을 것만 같던 그 탑은 무너지고 파괴되고 말았다. 내 모든 심장은 산산조각 났고, 내 꿈도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지금 두 길 중 하나를 선택할 때가 되었다. 나의 조국이냐 아니면 죽음이냐. 누가 나의 조국, 나의 집을 되돌릴 수 있을까. 세상아, 이리 와 내게 대답해다오. 누가 내 조국과 집을 되돌릴 수 있을까.
4. 다마스쿠스여. 양심은 죽어버렸네.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파괴하는 것들뿐. 자유롭고 정의로운 심장은 상처받고 말았네. 모든 책들은 봉인되었네. 오, 젊은이들의 피여. 오, 영웅과 혁명을 하는 시민들의 피여. 바샤르 알 아사드, 너는 괴물이다. 내 시선은 널 향해. 내 심장은 너에게 갈 거야.
5. 시리아 나의 사랑하는 나라. 너를 등지고 떠나왔네. 너는 나의 희망, 내가 자긍심을 갖고 돌아갈 이유. 시리아, 너는 모든 나라들의 꽃이야. 다마스쿠스여, 내가 너를 떠났기에 정말 아프구나. 너는 영혼의 땅이거늘 많은 눈물을 흘려왔지. 나의 심장은 까맣게 타들어갔어.
6. 시: 심장의 귀환
떠날 시간이야. 슬픔과 억압의 시간이기도 하지. 내 마음은 다치고 찢기고 무너졌어. 지평선에는 슬픔의 조각들이 있어. 어디든 슬픔뿐이야. 슬픔이 사방으로 흩어지네. 인간 괴물들이 슬픔을 먹었지. 우리의 대지는 격전지가 되었네. 인간을 먹는 인간이 도처에 있네. 언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중략) 전쟁의 승리로 부서진 내 심장이 회복되는 그땐 조국에 돌아갈 거야.
국민일보는 국제구호단체 월드비전과의 기획으로 레바논, 아이티, 스리랑카에서 전쟁 또는 재난으로 무함마드처럼 집 잃은 아이들을 취재해 조만간 시리즈로 연재할 계획이다.
레바논 베카계곡=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