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희성] 어린이날의 초심

입력 2013-05-02 19:09


어린이날을 앞두고 주초부터 쏟아지는 쇼핑광고문자 때문에 휴대전화가 몸살을 앓고 있다. 백화점, 대형마트, 온라인쇼핑몰, 각종 외식업체에 여행사까지 합세해 상품 홍보에 열을 올린다. 선물과 가족 외식, 놀이공원이라는 평범한 코스는 이제 그만하라며 호텔디너쇼에 수입캠핑카까지 등장했다. 선물 가격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한 쇼핑몰에서 친절하게도 아이들 연령대별 선물 판매 순위를 정리해놨는데 상위권 선물 중에는 고가의 수입화장품을 세트로 사고도 남을 만한 가격대의 것도 있었다. 야구장도 안 가고 영화관도 안 가는 지출 절감의 시대에 오직 어린이 장난감만은 불황을 모르고 매출이 오르고 있다니, 역시 자식 이기는 부모 되기란 쉽지 않겠지 하면서도 주고 싶어도 못 주는 부모들도 많을 텐데 하는 생각에 착잡한 마음이 든다.

그런데 대체 언제부터 어린이날이 선물 주고 외식하고 놀이공원 가는 날이 되어버렸을까. 색동회 어르신들과 소파 방정환 선생님께서 만드신 어린이날은 어떤 날이었을까. 아이들이 갖고 싶은 것 갖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그저 내 아이만 좋으면 되는 그런 날일까.

1923년 5월 1일 방정환 선생님 등이 공표한 어린이날은 그런 날이 아니었다. 그날은 일제 식민치하에서 어린이에게 민족의 얼을 바로 심어 다시 세울 내 나라의 미래가 되게 하겠다는 선언의 날이었다. 구시대의 윤리적,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보호해 어린이가 인격적으로 존중받으며 차별 없이 즐겁게 배우고 놀게 하겠다고 다짐한 날. 아이들이 희망을 갖고 꿈을 꿀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한 날. 이 땅의 어린이들이 바르고 슬기롭고 씩씩하게 자랄 수 있게 굽어 살펴달라고 하늘을 향해 손 모아 기원한 날. 그날은 그런 날이었다.

그렇게 뜻깊은 날이었건만 강산이 아홉 번 변하는 동안 첫 마음은 사라지고 껍데기만 요란하게 남았다. 이제 어린이날은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며 내 자식 위하느라 남의 자식 가슴에 멍드는 것도 못 보는 그런 날이 된 듯하다.

어른으로서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나라의 내일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하고 성찰했던 그날의 진중함이 사뭇 아쉽다. 선물 대신 기부를 통해 주위를 보게 할 수도 있고 편지로 서로의 마음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 생각만 조금 바꾸면 아이 인생에 보다 특별한 하루를 선물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어린이날, 이제는 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김희성(일본어 통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