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고승욱] 만화, 언제까지 공짜로 볼 것인가

입력 2013-05-02 18:57


“무료로 소비되는 구조에서는 양질의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생산될 수 없다”

요즘은 만화가 대세다. 곳곳에서 열리는 만화페스티벌에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인다. 아기공룡 둘리의 30번째 생일이었던 지난달 22일을 전후해 만화가 김수정씨는 전 국민의 축하를 받았다. 한때 만화는 불량식품과 함께 단속의 대상이었지만 지금 초등학생들은 영어와 수학, 한자 공부를 만화책을 펴놓고 한다.

지금 만화는 드라마, K팝에 이어 한류를 이끌 ‘콘텐츠의 씨앗’이다. 창조경제를 선도할 지식 콘텐츠로도 주목받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뽀로로’ 시사회에서 “만화영화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밝혀 박수를 받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올해 만화수출액이 2000만 달러를 넘을 것으로 예상했다. 연평균 100% 이상 상승세가 3년 넘게 이어졌다.

실제로 만화를 즐기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출근길 버스와 지하철에는 스마트폰으로 웹툰(webtoon·포털사이트에 연재되는 만화)을 보는 직장인이 적지 않다. 상상을 초월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는 물론이고 탄탄한 구성에 삶을 돌아보게 하는 깊이까지 갖춘 명품이 쏟아져 나오니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돼 성공을 거둔 만화도 많지만 지금은 만화가 그 자체로 문화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미래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만화가들의 여건은 어떨까. 최근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만화가들의 수입을 놓고 갑론을박이 있었다. ‘외제차를 바꿔 타는 억대 연봉 작가가 갈수록 늘고 있다’로 시작하는 한 기사가 촉발한 논쟁이었다. 이 기사는 네이버에 ‘마음의 소리’를 연재하는 조석씨, 영화화가 진행 중인 ‘신과 함께’의 작가 주호민씨 등을 예로 들며 영화, 게임, 캐릭터 판매, 간접광고 등 다양한 수익 모델을 활용해 매달 수천만원의 수입을 올리는 작가가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반론이 적지 않았다. 인터넷에 웹툰을 올리는 대부분 작가들이 원고료로는 도저히 생활할 수 없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데 무슨 소리냐는 것이다. 상위 1%의 성공으로 ‘만화가 좋아 가난 속에서도 밤을 새며 창작에 매달리는’ 만화가들을 평가하지 말라는 의견이 많았다. 강우석 감독이 만든 영화 ‘이끼’의 원작자이자 최근 ‘미생-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의 작가 윤태호씨가 기사를 반박하는 내용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다. 인터넷포털 다음에서 연재된 미생은 누적조회수가 800만건이 넘는다. 그런 윤씨가 ‘억대 연봉’에 동의하지 않았다. 워낙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참여한 덕분인지 논쟁은 불필요한 감정싸움 없이 정리됐지만 만화가의 수입을 둘러싼 상반된 견해는 시사하는 바가 컸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만화 생태계를 이야기한다. 한 포털의 경우 만화를 보기 위한 방문자 수가 월 1700만명에 달하지만 신인 만화가에게 지급되는 원고료는 월 100만∼150만원 수준이다. 만화잡지를 중심으로 형성됐던 소비구조가 2000년대 중반 이후 돈을 받지 않는 웹툰으로 이동하면서 ‘만화는 무료’라는 생각이 고정됐고, 만화가는 창작의 대가 대신 포털에 광고를 유발한 ‘공로’를 환산한 보수를 받게 된 것이다. 누구에게나 창작의 기회를 제공하고, 경쟁력 있는 콘텐츠 생산을 가능케 한 웹툰이 지닌 어두운 단면이다. 최근 주요 포털이 일부 인기 있는 만화를 유료로 전환하고, 방문자 수에 맞춰 원고료를 지급하는 개선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비단 만화뿐이 아니다. 인터넷이 보편화된 뒤 우리 사회에는 콘텐츠는 공짜라는 생각이 알게 모르게 자리 잡았다. 새로운 음악을 위해 도전하는 신인 뮤지션들에게 터무니없는 음원 가격은 절망만 안겨준다. 학자들의 전문지식이나 저널리스트들의 보도와 해설은 ‘공유’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인터넷에서의 클릭수가 콘텐츠의 가치를 결정한다. 하지만 이런 기형적인 구조에서 양질의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생산될 수 없다. 공짜가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