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대한민국을 위한 부패 방지 처방전
입력 2013-05-02 17:20 수정 2013-05-02 19:22
이제는 누군가 해야 할 이야기/김영란·김두식/쌤앤파커스
검사 출신의 김두식(46)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해 10월 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예상치 않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김영란(57) 당시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이었다. 그에게 부패방지에 관한 책을 함께 쓰자고 제안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이제는 누군가 해야 할 이야기’는 두 사람의 대화 형식으로, 한국 사회에 뿌리 내린 부패 구조를 밝히고 현실적인 대안을 찾는다. 지난해 남편 강지원 변호사의 대선 출마에 권익위원장 사표를 던진 ‘여성 1호 대법관’, 그리고 ‘불멸의 신성가족’으로 검찰 내부의 적나라한 모습을 폭로한 ‘문제적 검사’가 함께 쓴 책이라는 점에서 센세이셔널하다.
책은 마침 일명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이 새삼 이슈로 떠오른 시점에 나와서 주목을 받고 있다. 권익위가 올 상반기 중 ‘김영란법’을 입법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법은 공직자가 100만원을 넘는 금품이나 향응을 받을 경우 대가성이 없어도 형사처벌을 하도록 했다. 또 공직자가 사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직무 수행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대가성이 없는데도 처벌하는 건 지나치지 않을까. 그러다 전 국민을 범죄자로 몰고 가는 건 아닌가. 이런 논란이 이는 가운데 나온 책은 ‘김영란법’ 입안 당사자가 육성으로 밝힌 ‘입안 이유서’가 된 셈이다.
비장감이 느껴지는 책 제목이 예고하듯 책은 일상화된 부패와 청탁의 문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개인 경험을 고백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김 전 위원장은 판사 시절 사법연수원을 갓 나온 변호사들이 돌리는 5만원짜리 상품권을 놓고 고민했던 개인적 경험을 털어놓는다. 또 받아도 돌려줄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 앞에서 고뇌는 깊었다.
삼성 같은 재벌그룹들이 어떤 식으로 담당 대법관을 관리했는지, 또 당시 친구를 동원한 재벌의 청탁시도를 거절했다가 오히려 이것 때문에 가슴을 쓸어내렸던 사연도 있다. 그래서 김 전 위원장은 말한다. “제 문제의식은 착한 사람들도 발을 조금만 젖게 하면 금방 온몸을 다 적시게 된다는 데에서 출발했어요.”
김 전 위원장은 우리 사회의 부패 원인을 일상화된 연줄 문화에서 찾는다. “아는 사람끼리 서로 도와주고 도움 받는 것, 한 건 봐줬으면 다음에는 돌려줘야죠. 돈이 오가느냐만 따져서는 부패를 막을 수 없어요. 이런 부패는 대가관계나 직무관련성만 따져서는 막을 수 없어요.”
특히 연줄 문화는 엘리트끼리 카르텔을 만들어 우리 사회의 계층 이동을 불가능하게 하고, 이런 굳어버린 사회에서는 새로운 생각,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다는 데까지 그의 사유가 미친다. 왜 이렇게 처벌 위주의 법을 만드느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오히려 공무원에게 부정청탁을 회피하는 수단을 마련해주는 법”이라고 확신 있게 말한다.
이는 또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반부패 정책은 권력형 부패를 막는 것이라는 생각과 연결돼 있다. 임기 말이면 대통령 측근 비리가 슬슬 나오고, 새 정부가 들어설 즈음 누군가 수갑을 차는 현실 앞에서 국민들은 절망감을 느끼고 비리를 간접 학습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두 사람은 ‘김영란법’ 외에 정치자금법 개혁 방안, 검찰 개혁 방안으로 자주 거론되는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 신설 방안 등에 대해 치밀하게 검토한다.
우리 사회의 비리와 문제점을 폭로하고 비판하는 책은 많다. 하지만 이처럼 대안까지 내놓은 책은 드물다. 이는 흔히 일컬어지는 ‘입 진보’ 논객들의 책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