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신동엽문학관 개관… 통일 노래한 민족시인 기려

입력 2013-05-02 17:10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라고 노래했던 민족시인 신동엽(1930∼1969·사진). 그를 기리기 위한 신동엽문학관 개관식이 3일 오후 2시 고향인 충남 부여군 부여읍 신동엽길 12번지에서 열린다. 아들 신좌섭 서울대 의대 교수 등 유족이 참석한 가운데 유품 전달식, 흉상 제막식, 헌화식 등으로 진행되는 개관식은 이날 오후 7시 부여군 청소년수련원에서 열리는 ‘신동엽 문학의 밤’으로 이어진다.

지상 1층, 지하 1층과 옥상 정원으로 구성된 문학관(연면적 800m²)은 건축가 승효상의 작품이다. 문학관 앞쪽엔 파란색 기와를 얹은 생가가 자리 잡고 있다. 원래 초가집이었지만 1985년 복원하면서 기와를 얹었다.

신동엽은 한국전쟁 당시 국민방위군에 징집돼 전쟁의 한복판을 통과했으며 이때의 경험은 시인의 삶에 크나큰 질곡이 됐다. 쇠약해진 몸으로 국민방위군 수용소를 빠져나와 귀향하는 도중에 걸린 디스토마는 평생 건강을 위협했고 결국 사망의 빌미가 된다. 그만큼 전쟁의 비극은 시인의 시에 분명하게 각인됐고 분단의 아픔은 그의 역사의식과 어우러져 민족적 색채를 띠게 했다.

이러한 색채는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입선된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와 4800여행에 걸친 장편 서사시 ‘금강’(1967)을 통해 표출됐다. 특히 ‘금강’은 동학농민전쟁을 배경으로 하여, 이 역사적 사건이 4·19혁명과 그 이후까지 이어지는 현재적 사건임을 뜨거운 언어로 그려낸 작품이다. “내가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그 가슴 두근거리는 큰 역사를/ 몸으로 겪은 사람들이 그땐/ 그 오포 부는 하늘 아래 더러 살고 있었단다.”(‘금강’ 부분)

하지만 이런 사회변혁의 어조로 인해 시인 사후에 발간된 ‘신동엽 전집’(1975)은 두 달도 못돼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판매금지조치 당했다. 이은봉 신동엽학회장은 “신동엽은 시와 산문에서 유난히 완충과 중립이라는 말을 자주 썼는데 이는 비무장지대의 확장을 통해 통일을 이루자는 발상인 동시에 시인으로서 자신에게 부과한 하나의 문학적 대안이었다”며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라는 구절이야말로 완충과 중립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담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