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강권력 쥔 포도대장, 文武 차별에 눈물 짓다
입력 2013-05-02 17:17 수정 2013-05-02 22:13
조선의 포도대장/이수광/한얼미디어
이양생은 아버지가 군수였다. 하지만 서자라는 이유로 아버지가 돌보지 않아 어릴 때부터 짚신을 삼아 생계를 이었다. 무술 연마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그는 장성해 장용위(조선 전기 중앙군에 속한 군대) 군사가 됐다. 마침내 그에게 신분상승 기회가 왔다. 때는 조선 세조 즉위 초기. 이시애의 반란(1467)이 일어난 것이다.
이양생은 반란군 토벌에 혁혁한 공을 세웠고, 서자 출신에서 일약 공신으로 책봉됐다. 왕을 호위하는 ‘겸사복’ 자리에 오르는 출세를 했다. 세월이 흘러 성종이 왕이 됐다. 이양생을 눈여겨본 임금은 그를 포도장(포도대장의 전신)에 임명했다. 전국에 도적떼가 출몰하면서 지방 관청이 도적을 감당하지 못하자 포도장 제도를 신설한 것이다.
포도대장은 드라마에 자주 등장해 친숙한 캐릭터다. 하지만 우리에게 포도대장은 포졸들을 호령하는 엑스트라로 기억될 뿐이다. 역사전문저술가 이수광씨가 쓴 ‘조선의 포도대장’은 역사 주변에 묻혀 있던 그들을 주인공으로 불러낸 책이다.
최초의 포도대장 이양생에서부터 유부녀 납치사건의 희생자가 된 숙종 때의 구일, 영조 때 오늘날의 조직폭력배인 ‘검계’를 일망타진한 장붕익, 고종 때에 천주교인들에게 염라대왕으로 불렸던 이경하까지 조선왕조실록에서 건져 올린 12인의 포도대장을 다룬다. 그들을 통해 절도, 살인, 역모, 강간, 성폭행, 조직폭력 등 범죄를 살피고, 조선의 범죄를 통해 조선 사회사를 들여다볼 수 있다.
포도대장은 도적을 검거하는 포도청의 대장이다. 요즘으로 치면 민생치안을 책임진 경찰청장. 도적 체포가 주업무였던 포도대장의 존재는 역으로 가렴주구와 학정이 판을 쳤다는 것이기에 이 책은 민중의 애환으로도 읽힌다. 실록에서도 ‘모이면 도적이고 흩어지면 백성’이라고 했다.
명종 때 의적 임꺽정의 이야기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각종 사료를 통해 임꺽정은 ‘대도(大盜)’이기는 했으나 벽초 홍명희가 소설에서 이상화했던 대로 ‘의적’은 아니었다고 잘라 말한다.
백정 출신의 임꺽정은 자신도 이양생처럼 무공을 세워 성공하고 싶었다. 실제 군역을 나갔을 때 왜구를 토벌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왜구를 섬멸하고도 상은 벼슬이 높은 자들의 차지로 돌아갔을 뿐이었다. 공평치 않은 세상에 분개한 그는 도적이 됐다. 경기, 황해, 강원 등 여러 도에 출몰해 민심을 흉흉하게 만들었고 급기야 한양에까지 진출했다. 그런 임꺽정을 지략으로 체포한 이가 포도대장(당시 명칭은 토포사) 남치근이다. 하지만 남치근은 무공을 세웠음에도 무신이라는 이유로 문신들의 심한 견제와 탄핵을 받았고 무덤에는 비석 하나 세워지지 못했다.
이렇듯 포도대장 이야기를 관통하는 것은 조선시대의 극심했던 문무 차별이다. 인조 2년의 ‘이괄의 난’도 그런 배경을 깔고 있다. 이괄도 포도대장 출신이다. 포도대장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얘기인데, 어쩌다 그렇게 됐을까. 이괄은 명문가 태생이었다.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나 무예에 출중했다. 인조 반정을 성공으로 이끌었고, 공로를 인정받아 포도대장에 임명됐다.
하지만 반정의 성공 이후 당연하게 공신 간 치열한 권력투쟁이 벌어졌다. 결국 문신들에 의해 변방의 외적을 막아야 한다는 이유로 사실상 좌천됐고, 이에 그치지 않고 아들이 반역을 꾀한다는 모함까지 받아 거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패색이 짙어지면서 배신한 부하들에 의해 살해된 그는 조선시대 문무 갈등의 희생양이었던 것이다.
포도대장은 권력을 휘두르기도 했고, 그 권력이 비수가 돼 자신에게 꽂히기도 했다. 제도를 신설한 성종은 포도대장에게 관찰사를 지휘할 수 있는 절대적 권한까지 주었다. 초기에는 치안을 책임졌지만 후기에는 당쟁, 세도, 외척 정치 관련 정적 제거, 천주교 탄압 등에 동원됐고, 도성 궁궐을 호위하고 왕의 왕릉 행차를 수행하는 임무까지 맡았다.
광해군 때 포도대장 한희길은 권력을 농단한 대표적 케이스다. 그는 이른바 ‘칠서의 옥’이라는 역모사건을 다루었는데, 존재하지도 않았던 역모사건을 자백받기 위해 가혹한 고문을 가했다. 당시 그는 잡아들인 죄인들이 뇌물을 바치면 풀어주곤 해서 부자가 됐다고 실록은 전한다.
이처럼 권력을 발판삼아 스스로 부패하기도 했지만 포도대장이 강직하면 부패한 관리들이 그를 탄핵했다. 당파가 다르면 다른 당에서 탄핵을 했다. 이괄, 남치근의 예에서처럼 무신이라고 무시한 문신들의 탄핵은 비일비재했다. 그래서 12인의 삶은 인간사 흥망성쇠, 권력무상의 인간드라마이기도 하다.
저자는 소설로 등단한 바 있다. 또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 등 전작들이 보여주듯, 조선의 뒷골목 역사에 강하다. 이런 장점들이 버무려져 이야기가 소설처럼 물 흐르듯 흘러가 편안하게 읽힌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