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회 전주국제영화제, 김영하 단편 3편 영화와 만나다

입력 2013-05-01 19:22


“내 소설 다른 방식으로 스크린에 풀어내 흥미”

그가 카페에 들어서는 순간, 공기가 흔들렸다. 누군가 유명 인사가 왔구나 하는 느낌. 고개를 돌려보니 소설가 김영하(45·사진)다. 그는 올해 제14회 전주국제영화제(4월 25일∼5월 3일)를 방문한 스타 중 한 명이다. 개막식장에 그가 들어서자 팬들의 함성이 들렸고, 카페에 앉아 있으면 사인을 받으려는 팬이 몰려왔다. ‘한국경쟁’ 부문 심사위원이자, 전주영화제 대표 프로젝트인 ‘숏!숏!숏!’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숏!숏!숏!’은 한국 영화감독 2∼3인이 공통 주제로 단편영화를 제작하는 것. 올해는 ‘소설, 영화와 만나다’라는 기획 아래 김영하의 작품 세 편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지난달 26일 전주 한옥마을에서 그를 만났다.

“미국 뉴욕에서 언제 왔느냐”고 근황부터 물었다. 소설을 쓰겠다고 훌쩍 외국으로 떠난 지 3년여, 그는 지난해 가을 돌아왔다. 서울이 아닌 부산에 자리 잡았다. 왜 부산일까. “해산물을 좋아한다. 그동안 뉴욕과 밴쿠버에서 살았다. 난 몽골에선 못 산다.” 그는 웃기려고 한 건 아닌데 웃긴, 농담 같지만 진심이 담긴 대답을 이어갔다. 서울과 적당한 거리가 있어서 좋다고 했다. “서울에서 오라고 할 때 가기 싫으면 ‘너무 멀다. 지금 부산이야’하고, 가고 싶으면 ‘KTX 있으니 간다’고 한다.”

전주영화제에서 자신의 작품을 영화화한다는 소식 들었을 때 어땠을까. “젊은 감독에게 기회 준다는 의미에서 흔쾌히 동의했다. 이들의 과감한 상상력이 영화에서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했다.”

그의 소설은 상업영화보다는 저예산 예술영화로 주로 만들어졌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감독 전수일)가 그렇고 올해 전주영화제 ‘코리아 시네마스케이프’에서 상영되는 ‘오빠가 돌아왔다’(감독 노진수)도 그렇다. “그래서 재산 형성에는 도움이 안 된다. 하하. 감독의 명성이나 전작은 고려하지 않는다. 포텐셜(잠재력)을 보는 편이다.”

‘숏!숏!숏!’에서는 김영하의 소설 ‘피뢰침’이 영화 ‘번개와 춤을’(감독 이진우)로, ‘마지막 손님’이 ‘THE BODY’(감독 박진성·박진석)로, ‘비상구’가 ‘비상구’(감독 이상우)로 만들어졌다.

‘피뢰침’은 그가 10여 년 전 서울 성산동의 한 아파트에 살 때 구상한 작품. 벼락이 치던 어느 날, 아파트가 우르릉 쾅쾅 흔들리는 걸 느꼈다. 문득 일부러 벼락을 맞으러 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적인 소양이 깊은’ 아내에게 얘기했더니 ‘풋’하고 웃었다. 아, 문예지에 낼만한 소설은 아니구나 싶었다. “그럴 때 오기가 생긴다. 이건 문학이 안 될 거야라고 생각하니 써보고 싶었다.”

‘마지막 손님’은 20매가 약간 넘는 소설이다. 다들 문학이 되기엔 너무 짧다고 했다. 방황하는 청춘을 다룬 ‘비상구’는 또 어떤가. 주변에서 너무 야하다고들 했다. 6개월간 서랍에 묵혀 놨다. 그러다가 그가 ‘잘 나가게’ 됐고 청탁이 몰렸다. 그래서 서랍에 있던 거 꺼냈다. 쇼킹하다는 반응, 우리 문학에서 다루지 않았던 인물을 다뤘기 때문이다.

김영하는 “감독들이 고른 세 작품 모두 내가 ‘과연 문학이 될 수 있을까’ 고민했던 작품”이라며 “젊은 감독이 품고 있는 실험적인 정신이 시차가 있기는 하지만 뒤늦게 영화와 만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특히 ‘THE BODY’와 ‘번개와 춤을’은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서 흥미로웠다”고 평했다.

한국경쟁 부문 심사위원 얘기로 넘어갔다. “‘숏!숏!숏!’ 때문에 전주에 와야 했고, 오는 김에 심사를 하자고 생각했다. 무엇이든 새로운 일이 흥미를 느낀다.” 근데 막상 와보니 심상치 않다. 10편을 봐야 하고, 다른 심사위원 두 명이 유럽인이라 일찍 간다. 그가 폐막식에서 시상을 해야 한다. 그는 “전주영화제 처음 왔는데 개막식부터 폐막식까지 있는 유일한 게스트가 되겠다”며 웃었다. 어떤 영화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더니 “실험적이고 젊은 에너지가 넘치는 작품”이라며 “지난해는 ‘파수꾼’을 흥미롭게 봤다”고 말했다. 현재 6월 출간을 목표로 장편소설을 마무리 중이다.

전주=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