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어 같은 금융용어… 직원들은 알랑가몰라
입력 2013-05-01 19:01
‘수수료는 은행 영업점 및 인터넷 홈페이지에 고시되는 금액별 당발송금 수수료와 전신료가 적용되며….’ 흔히 볼 수 있는 은행권 수수료 약관의 일부다. 어쨌든 고객한테서 수수료를 떼어가겠다는 뜻인 것 같은데 ‘당발송금’이라는 게 뭔지 도무지 종잡기 어렵다.
당발송금(當發送金)은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여기서 보내는 돈’으로 풀이된다. 금융권에서 이 용어는 국내에서 해외로 보내는 외국돈이라는 뜻으로 통용된다. ‘타발송금’은 거꾸로 해외에서 국내로 들어오는 외국돈을 말한다.
이 밖에도 개비(開扉), 개호(介護), 공부(公簿), 소구(遡求), 수상(受傷), 인영(印影) 등 의미를 알 듯 말 듯하거나 아예 짐작조차 안 되는 단어가 금융권에서는 일상용어로 쓰이고 있다. 이 때문에 대다수 소비자가 금융거래를 할 때마다 골머리를 앓는다. 알쏭달쏭한 용어 때문에 금전적 손실까지 떠안는 경우도 있다. 보험이나 투자 상품에 가입할 때는 어려운 용어가 불완전 판매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1일 “내가 보험 관련 업무를 20년 가까이 했지만 증권 등 다른 금융업종 용어는 아직도 생소한 게 많다”며 “거꾸로 증권사나 은행 쪽 사람이 볼 때에는 보험 용어가 상당히 어렵게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 종사자조차 자기 분야가 아닌 금융용어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금융용어의 난해함은 법률용어와 마찬가지로 글자 수를 줄이려고 뜻글자인 한자를 조합하거나, 일본 사례를 참고하는 과정에서 일본식 한자어를 그대로 갖다 쓰면서 생겼다. 정작 일본 금융회사는 소비자가 이해하기 쉬운 용어로 바꾸는 추세다.
신문이나 책에서 한자를 함께 쓰던 과거에는 금융용어들이 한자어로 쓰였고, 소비자도 어느 정도 의미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자어를 모두 한글 발음으로 옮겨 적는 데다 한자어를 옆에 같이 적더라도 뜻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같은 말이라면 가급적 짧은 단어로 적는 게 좋다는 언어의 효율성 취지가 무색한 것이다.
금감원은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소비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금융용어 114개를 우선 개선키로 했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바꾸거나 쉽게 풀어쓰고, 대체 용어를 찾기 어려울 때에는 괄호 안이나 각주에 설명을 넣는 방식이다.
금감원은 금융권역별 협회와 금융회사가 약관, 상품 설명서, 공시자료 등에 이번 개선 사항을 반영하도록 했다. 또 소비자가 다른 금융용어에 대해서도 직접 개선을 건의할 수 있도록 다음 달 말까지 금감원 홈페이지에 ‘국민제안’ 코너를 운영하기로 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