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 일시보호소 생후 100일 지난 아이들 많아… 낯가려 입양 더 어려워져

입력 2013-05-01 18:55 수정 2013-05-01 22:22


국민일보 김유나 기자, 입양 일시보호소 르포

지난 30일 찾은 서울 역삼동 대한사회복지회 일시보호소. 입구에 들어서자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울려퍼졌다. 신생아방과 유리창으로 구분된 영아방은 생후 100일부터 8개월 된 아기들을 위한 공간이다. 이 방에 있던 민혁이(가명)는 기자가 다가가자 큰 눈을 깜박이며 미소를 지었다. 지난해 11월 28일 태어나 이곳에서 두 번째로 나이가 많다. 지난 1월 3일 이곳에 온 민혁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얼굴도, 몸집도 컸다.

침대맡에는 민혁이의 백일사진이 붙어 있었다. 생후 100일이 넘도록 입양되지 못하는 아이들이 늘면서 이곳에선 매달 백일잔치, 돌잔치가 열린다. 한 사진작가의 재능기부로 민혁이도 백일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는 옆방 막내들과 달리 이 방 아기들은 기어 다니고 목을 가누기 시작했다. 이날 병원에 진찰받으러 간 아기를 제외하고 방에 있던 아기는 11명. 하지만 아기들을 돌보는 손길은 50∼60대 자원봉사자 두 명과 20대 사회복지사 한 명이 전부였다. 아기들을 한 명씩 안아줄 수 없어 아기들은 아기용 그네나 보행기 장난감을 혼자 타고 있었다. 봉사자들은 장난감의 흔들림이 멈출 때마다 한번 ‘툭’ 건드렸다. 그러면 아기들은 다시 혼자 그네를 타고 보행기에서 발을 굴렀다.

혼자 잘 노는 동생들과 달리 민혁이는 계속해서 안아 달라고 보채기 시작했다. 기자가 다가가자 안아 달라고 손을 뻗었다. 신기하게도 안아주려고 겨드랑이를 잡으면 자동으로 울음을 뚝 멈췄다. 취재를 위해 잠시 침대에 내려놓으려 하자 민혁이는 기자의 머리카락을 잡고 놔주지 않았다. 한 자원봉사자는 “새로운 누나가 와서 좋은가 보네”라며 웃었다. 이 보호소에는 민혁이 같은 아기 60여명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자원봉사자 채모(66·여)씨는 “아기들이 더 크기 전에 빨리 새 가정을 찾아 가야 할 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

같은 날 오후 서울 창천동 동방사회복지회 일시보호소 역시 60여명의 아기들로 북새통이었다. 가장 나이 많은 아기들이 자라는 ‘C방’ 문을 열자 우유비린내가 진동했다. 아기들에게 일일이 우유를 먹여주기엔 일손이 부족하다. 아기들은 어깨에 수건을 괴어놓고 직접 우유병을 빨았다. 지난해 가을에서 겨울 사이에 태어난 16명의 건강한 왕자님들은 귀엽고 예뻤지만 안타깝게도 절반 정도만 입양대기 중이다. 여자 갓난아기를 선호하는 국내 입양문화 때문이다.

아기들은 침대를 놔두고 대부분 놀이매트에서 함께 기어 다니며 놀고 있었다. 아기를 한 명씩 살피며 눈을 맞추는데 자다 일어난 시후(가명)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자원봉사자 엄마’가 옆에 있던 막내 철규(가명)를 안아주자 자신도 안아 달라고 보채는 것이다. 지난해 9월 20일에 태어난 시후는 한 달 만에 이곳에 맡겨져 현재 C방 최고참이다. 겨우 1주일 된 철규가 ‘엄마’를 독차지했으니 화가 난 것이다. 자원봉사자는 “시후는 이 방에서 질투의 화신”이라며 “식구들이 늘면서 아기들이 전보다 더 어리광을 부리게 됐다”고 말했다.

이 방의 아기는 16명인데 아기 침대는 11개뿐이어서 침대 5개는 아기 두 명이 나눠 쓰고 있다. 아기들은 침대 방향대로 세로로 누워야 하지만 두 명이 한 침대를 쓰느라 가로로 누워서 생활하고 있다. 법원의 입양 심사가 지연되면서 벌어지는 풍경이다.

낯선 손님을 반기며 노느라 볼이 빨갛게 상기됐던 지현(가명)이는 오랜만에 놀아줄 사람을 만났는지 실컷 놀다가 놀이매트 위에서 잠이 들었다. 취재를 마치고 떠날 때쯤 품에 안겨 있던 시후가 이별을 직감했는지 고사리손으로 기자의 옷을 꼭 쥐었다. “이제 누나 갈 시간인데…”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동안 자원봉사자는 익숙하게 시후의 말아 쥔 다섯 손가락을 하나씩 펴냈다. “시후도 진짜 엄마를 만나는 날이 곧 오겠죠?” 이 질문에 자원봉사자는 대답 대신 희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글·사진=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