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조작의 시대… 방송·인터넷 거짓사연 판친다

입력 2013-05-01 18:17


라디오 방송에 가짜 사연을 올려 8000만원대 경품을 챙긴 남성이 경찰에 검거되면서 매일 방송에 소개되는 숱한 ‘사연’의 진실성에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감동과 재미를 위해 일반인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방송 프로그램마다 ‘조작’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인터넷 공간에서도 익명을 이용해 만들어내는 가짜 이야기가 넘쳐난다.

시청자들의 독특한 사연을 소개하는 KBS2 TV 예능프로그램 ‘안녕하세요’는 지난 29일 결혼 5개월이 지났지만 집에 7번밖에 안 들어갔다는 여성의 사연이 소개됐다. 이 여성의 남편은 “아내가 너무 자유분방하다”며 “아내 때문에 웨딩사진도 논에서 찍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이 사연은 1등으로 선정돼 100만원 상금을 받았다. 그러나 방송 직후 네티즌들은 인터넷을 뒤져 이 부부가 동호회 활동을 함께 하고 있는 사실 등을 찾아냈고, ‘상금을 받기 위한 거짓말’이란 주장이 확산됐다. 해당 부부와 제작진이 이를 강력히 부인하면서 ‘조작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방송된 케이블 채널 tvN의 ‘화성인 X파일’에는 2년 동안 120명의 남자를 만나 1억원어치 선물을 받았다는 ‘선물집착녀’가 출연했다. 이 여성은 방송 직후 신상정보가 인터넷에 공개되며 혹독한 비난을 받았다. 결국 이 여성은 한 인터넷 사이트에 ‘방송에 나간 상당 부분은 제작진에 의해 과장된 것이며, 방송에 등장한 소개팅남(男)들은 작가가 데려온 인물’이라고 밝혔다.

인터넷상에서는 익명이 보장된다는 점을 악용해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사건에 대한 허위 사실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지난해 7월 제주 올레길 살인사건 발생 직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닉네임 ‘대망생’이란 네티즌이 ‘범인은 3년 전 제주도 여교사 살인사건과 동일범’이란 허위 글을 올려 논란을 일으켰다.

지난 2월에는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자신을 탤런트 박시후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글이 게시되기도 했다. 이 글에는 자신이 성폭행 논란 당사자인 A양을 만나게 된 경위가 자세히 적혀 있고, 성폭행한 적이 없다는 주장과 함께 경찰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누가 봐도 박씨 본인이 작성한 글처럼 보였다. SNS를 통해 급속히 퍼져나갔던 이 글은 한 네티즌이 박씨를 사칭한 것이었다.

고부갈등, 연애상담, 다이어트 후기 등 일상을 공유하고 고민을 나누는 포털사이트 게시판에도 허위 글이 난무한다. 네티즌 김모(40·여)씨는 “인터넷 카페에서 시댁 식구들에게 폭행과 모욕을 당했다는 사연을 읽고, 마음이 아프고 공감이 가서 쪽지로 장문의 위로하는 글을 보냈는데 알고 보니 지어낸 이야기였다”며 허탈해했다.

이익을 위해 사실을 조작하는 경우도 있다. 인터넷 쇼핑몰 직원들의 경우 포털사이트에 여러 개의 작업용 아이디를 이용해 본인이 질문하고 동시에 그럴듯한 답변을 내놔 네티즌들을 현혹한다. 지난해 7월에는 가수 백지영씨가 운영했던 쇼핑몰 직원들이 허위 후기를 작성한 사실이 들통나 비난을 받았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1일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것에 주목하는 사회 풍토와 주목받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성, 익명성이 보장되면서 주목을 끌 수 있는 인터넷 공간의 삼박자가 맞아 떨어져 거짓사연, 자작글이 만들어지는 것”이라며 “지속적으로 허위사실이 유포되면서 결국 사회 전반에 불신이 팽배해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