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를 넘어 함께하는 우리로 (18)] 조혼 금지·축첩 반대… 여성의 권리를 찾다
입력 2013-05-01 17:31
다양한 가족, 함께 하는 사회
가족은 여성의 무덤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가족 구성원으로서 여성의 삶은 녹록지 않다. 물론 이 말은 우리 사회에만 통용되는 건 아니다.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를 막론하고 가족은 여성에게 평안의 장소이기보다는 때론 모성과 미덕이라는 이름으로 희생을 강요한 곳이기도 했다. 누군가의 희생 위에서 가족이 유지된다는 것은 비극이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가족 구성원 개개인의 인간적인 권리가 보호되지 않는 가족은 더 이상 가족이 아니다.
한국YWCA가 지난 90년 동안 남긴 크고 작은 족적들은 한국 여성들의 삶의 역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족과 여성을 위한 활동들은 전통적인 가부장적인 가족 속에 갇혀 잃어버리고 빼앗겼던 여성 개개인의 권리를 찾아주는 운동이었다. 조혼금지 및 축첩반대 운동은 가족 속에서 여성권리 찾기 운동의 서막을 열었다.
한국YWCA는 1925년 사회문제부를 설치하고 한국 최초의 여성 판사인 이태영씨를 영입해 사회문제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축첩 및 조혼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계몽 방법을 연구하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 조혼 풍습은 열 살 안팎의 어린 여성을 결혼시킴으로써 종에 가까운 노동력을 제공하고 출산, 시부모 봉양 등으로 심각한 인권 침해를 초래했다. 뿐만 아니라 공부해야 될 때를 박탈당함으로써 성인이 된 후 여성의 삶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조혼은 미풍양속이 아니라 악습임을 계몽하고 어린 여성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운동을 전개했다.
또 혼인신고 운동과 축첩반대 운동을 전개해 남편으로부터 버림받거나 부당한 피해를 당하는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다. 축첩반대 운동은 1899년 4월 양반가의 여성으로 구성된 ‘여우회’라는 여성단체의 주도로 최초로 가시화됐다. 여우회는 고종황제에게 ‘한 지아비가 두 아내를 거느린 것은 인륜을 거스르는 길이며, 덕과 의를 잃는 행위이므로 상감께서 먼저 후궁을 물리치고 공경대부로부터 미관말직과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절대 첩을 두지 말라’는 칙령을 내려 달라고 호소했다.
이렇게 시작된 축첩반대 운동은 1960년대까지 꾸준히 진행됐다. 이 운동은 한국YWCA연합회 박에스더 고문총무의 영문 뉴스레터를 통해 세계YWCA와 유엔 여성지위향상위원회에도 보고됐다. 이후 국회의원 중 첩을 두고 있는 사람이 많아 여성단체 및 교회와 연대해 ‘축첩자를 뽑지 말자’는 캠페인을 명동에서 벌이기도 했다. 한복을 차려입은 여성 2000명이 벌인 이례적인 시위였고 이는 당시 유행하던 여러 시위와는 달리 선거와 연결시킨 한국여성운동의 한 사건으로 기록됐다.
1953년부터 가족법의 문제들을 제기하면서 가족법 개정운동을 전개했다. 헌법에서는 남녀가 평등하다고 천명하고 있으나 실제 하위법인 민법, 그중에서도 친족과 상속법에서는 조선시대의 유교적 남존여비 사상에 입각한 관습법이 그대로 입법화돼 남녀차별을 정당화했다. 50년에 걸친 가족법 개정운동은 친족 범위에서의 남녀평등, 동성동본불혼제도 폐지, 소유 불분명한 부부재산에 대한 부부의 공유, 이혼 배우자의 재산분배청구권, 협의이혼제도의 합리화, 부모의 친권공동행사, 적모서자관계와 계모자관계의 시정, 상속제도의 합리화, 이혼 및 사별 여성의 재혼금지조항 폐지를 이끌어냈다. 2005년에는 호주제 폐지가 확정되면서 YWCA가 1953년부터 시작한 가족법 개정운동이 최종 결실을 거두게 됐다. 이로써 한국 가족법은 부모평등, 부부평등, 남녀평등 이념의 실현에 기여할 수 있는 현대적인 가족법으로 재탄생됐다.
최근 인구통계적인 변화와 경제상황, 직업관, 페미니즘과 성역할의 변화 등 우리를 둘러싼 사회경제적 변화는 결혼과 가족생활 양식을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로 만들었다. 기러기 아빠로 대변되는 비동거 가족, 자발적인 무자녀 가족, 한부모 가족, 다문화 가족, 동성애 가족, 공동체 가족, 1인 가족 등이 그 사례들이다. 특히 1990년대 이후 급증한 국제결혼과 이로 인한 다문화가정의 증가는 한국 사회 여성운동에 새로운 과제를 던져 주었다. YWCA는 결혼이민여성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이들이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한 하늘 한 땅 운동’을 펼쳤다.
다양한 가족의 등장으로 한국YWCA의 가족 안 여성권리찾기 운동에 거는 기대와 소망은 더욱 커져가고 있다. 가족의 다양성만큼이나 더 다양하고 많은 가족의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기러기 아빠의 외로운 죽음, 결혼이민여성의 자살, 그리고 베이비 박스에 버려진 아이들. 이런 기사들을 접할 때마다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가족의 모습은 다양해졌지만 가족이 사랑과 애정의 공동체라는 사실은 변할 수 없다. 가족은 구성원 누군가의 희생 위에서가 아니라 가족 모두의 권리와 안정을 확인받는 전제에서 출발해야 된다. 한 사회의 건강성은 그 사회 가족의 건강성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가족의 구성원인 어머니의 삶이 희생과 폭력으로 얼룩져 있고 외로운 아버지의 눈물과 한숨, 그리고 자녀들의 분노로 가득찬 가족들이 만연한 사회는 더 이상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90년 동안 가족 안 여성권리찾기 운동을 주도해온 한국YWCA는 현 시점에서 가족 구성원 개개인에 대한 책임과 애정은 더 이상 중요한 것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가족은 단지 욕구와 욕망을 충전하는 공간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보고 그 대안을 찾아 나서야 할 것이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장, 한국YWCA연합회 평화나눔팀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