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덕수] 충무공 이순신과 창조경제
입력 2013-05-01 19:55 수정 2013-05-01 19:56
‘창조경제’가 화두로 등장했다. 많은 이들이 창조경제가 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야단이다.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은 설명을 위해 싸이의 젠틀맨을 예로 들기까지 하였다. 창조경제라는 게 과연 어렵고 낯선 것인가. 우리 역사에도 그 단서가 있다. 충무공 이순신을 보자.
첫 해전인 옥포해전에서 그는 새로운 전법을 사용했다. 전통적인 접근전 대신 원거리 함포전 전술을 적용했다. 그리하여 아군의 강점을 극대화하고 적군의 강점을 무력화했다. 육전에서는 가공할 신무기였던 조총을 해전에서는 무용지물로 만들었던 것이다.
사천해전에서는 거북선이 등장한다. 그는 철갑선이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 수군을 격파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라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반대가 적지 않았다. “어떻게 쇠가 물 위에 뜰 것인가. 판옥선에 뚜껑을 덮으면 총통 발사 후 연기로 장병들이 질식할 것이다….” 반대파들의 주장은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이 문제들을 창조적으로 해결해 비장의 무기를 확보했던 것이다.
세계전쟁사에 길이 남을 한산도 해전도 그렇다. 이순신은 육전에서 사용해 왔던 학익진을 역사상 최초로 해전에 응용한다. 역시 반대가 있었다. “해상에서 진형 유지가 어렵고 함정 간 거리 유지도 어려워 불가하다. 함정 상호 간 충돌의 위험성이 있고 어느 한쪽 진형이 무너지면 치명적인 혼란에 빠진다.” 그러나 이순신은 다도해의 수많은 섬을 이용해 해안 깊숙이 군함을 숨겼다가 일순간 신호에 의해 진형을 형성하고 거북선을 양 날개에 붙여 적의 지휘선을 집중적으로 선제공격하면 승산이 있다고 봤다. 결국 한산도해전은 압승을 거뒀다.
창조성은 비단 싸움에만 발휘된 것이 아니다. 전란 중임에도 그는 부대 인근의 버려진 땅과 해안을 개간해 농지로 만들어 둔전을 설치했고, 피란민들을 받아들여 수확을 나누게 함으로써 피폐해 있던 백성들을 구제하고 군수물자도 자체적으로 해결했다. 물고기를 잡고 해조류를 채취하고 소금을 생산했으며 전선 건조와 무기생산으로 공업생산력까지 확충했으니 이것이 창조적 경제활동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는 역사적인 자료와 교훈들을 당시 상황에 맞춰 새롭게 응용하고 우리가 가진 자원과 기술을 창의적으로 융합함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낸 것이다.
이런 아이디어는 머리만으로 짜낼 수는 없다. 충무공은 자기가 맡은 분야에 대해 무한한 책임감을 가졌으며 항상 죽음까지도 불사하겠다는 사명감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나라와 백성, 그리고 장병들을 진정으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도덕적·윤리적 가치를 품고 있었다. 그리고 사리사욕을 버리고 공정하게 업무를 수행하였으므로 노산 이은상 선생은 충무공을 “정돈된 인격자”라고 하였다. 항상 정직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였으므로 두려울 것이 없었고 용기가 샘솟는 듯했다. 그리고 이런 정신적 자산을 갖고 있었기에 창조적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분출할 수 있었다. 과연 우리에게도 이러한 책임감과 윤리의식이 있을까.
오늘날 임란 때에 버금가는 위기와 난관이 우리 주변을 감싸고 있다. 이런 환경은 우리에게 일상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충무공 이순신처럼 새로운 착안으로 경제에 창조성을 높이고, 국내외 정치 현안에 대해서도 창조력을 발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달 28일은 충무공 탄신 468주년이었다. 가신 지 415년이 됐지만 아직도 그분은 우렁찬 목소리로 또 다른 거북선과 학익진이 필요하다고 우리에게 역설하고 있다.
김덕수(에너지기술硏 감사·예비역 해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