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최현수] 개성공단은 살려야 한다

입력 2013-05-01 19:40


‘개성사람’을 뜻하는 말 가운데 ‘개성깍쟁이’라는 표현이 있다. 깍쟁이라는 말에는 얄밉도록 계산이 똑바르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개성상인’이 유명해진 것도 이런 빠른 계산법이 기반이 됐다. 개성상인은 계산만 빨랐던 것이 아니다. 절약과 절세, 근면과 성실, 신용과 협동정신, 자기 분야에서 최고를 추구하는 전문성 등으로 오늘까지 높은 평가를 받는 상도(商道)를 남겼다.

개성상인은 고려와 조선을 거쳐 일제 강점기까지 한반도의 상업을 주름잡았던 집단이다. 이들은 송방(松房)이라는 독특한 조직체계와 차인제도(差人制度)라는 경영제도, 사개치부법(四介置簿法)이라는 자신들만의 부기법을 고안해 우수한 상술을 펼쳤다.

이런 독특한 상인정신이 개성에서 나온 데는 지리적 위치가 한몫했다. 개성은 한강과 임진강, 그리고 예성강을 끼고 있다. 또 황해와 강원, 경기의 내륙지방을 이어주는 곳으로 내륙과 해양을 연결해주는 교량 역할도 해 육상과 해상교통의 요충지였다. 홍화상이 쓴 책 ‘개성상인’에 따르면 개성이 고려의 수도였을 때는 예성강 하류 벽란도에서 개성 성안까지 즐비하게 늘어선 가게들 처마 밑으로 다니면 비를 맞지 않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상업이 번성했다.

조선왕조가 들어선 뒤 개성 관료들은 새 왕조에 충성하는 대신 상업에 눈을 돌렸다. 식자층의 유입으로 개성상인들의 활동은 체계적으로 문서화됐고 상술도 세련돼졌다. 유럽의 상업국가 이탈리아보다 200년이나 앞서 복식부기를 고안해낸 것도 개성상인의 높은 지적 수준 덕분이었다. 일제시대에는 일제의 상권침탈에도 앞장서 저항했다.

6·25전쟁으로 남북이 나뉜 뒤 개성은 잊혀진 곳이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개성에 공업단지를 만들기로 하자 남북협력의 공간으로 부상했다. 개성공단은 양측의 경제적 필요가 맞아 떨어진 작품이었다. 북한은 1990년대부터 10여년간 지속적인 마이너스 성장으로 외부 자본의 수혈이 시급했다. 남측에게는 높은 임금과 공장부지 비용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들에게 활로를 제공할 수 있었다.

전북대 경제학과 엄영숙 교수는 한국비용편익분석연구원 개원2주년 기념세미나에서 개성공단을 포함한 남북경협사업으로 발생할 편익이 크다고 분석했다. 양질의 북한 노동력을 기반으로 질 좋은 제품을 비교적 낮은 비용으로 생산해낼 수 있어 우리 제조업의 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고 북한의 풍부한 자원을 공동 개발하면 자원자주개발률이 높아진다. 남북경협지역은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상징하는 공간이 돼 국가 브랜드도 높아지고 이 지역에 설치되는 사회기반시설은 남북한이 함께 발전하는 토대가 된다. 제대로만 운용된다면 파급효과는 상당하다.

2008년 현대경제연구원이 남북경협 성과를 분석한 보고서는 이 같은 전망을 뒷받침한다. 보고서는 지난 1989년 남북간 상품교역이 재개된 후 20년간 남북한은 94억 달러의 경제적 이익을 얻었고 정치군사적인 면에서는 정치적 대립의 완충과 남북관계의 제도화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통일비용 면에서 군비확장 축소 효과 등을 포함해 181억6000만 달러의 이익을 봤다고 분석했다. 한국산업단지 공단이 2011년 조사한 개성공단 운영의 파급효과분석 결과를 보면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생산유발효과는 5조2667억원에 달하고 취업유발효과는 2만7447명에 달한다.

북한은 스스로 개성공단을 ‘6·15 남북정상회담의 옥동자’라고 규정했다. 이런 성과를 감안하면 개성공단은 퍽 귀한 자식이다. 그런 자식을 이렇게 내팽개쳐서야 되겠는가. 북한은 개성공단을 정치적 압박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생각을 이제는 버려야 한다. 개성상인 정신이 다시 꽃피울 수 있도록 개성공단을 사업가들에게 돌려줘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최현수 군사전문 기자 hschoi@kmib.co.kr